그리고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사이를 채워줄 근사한 맛이 생겼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뜨문 뜨문 쓰지만 내 인생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에 어김없이 주어진 오늘 하루도 내 몸을 위한, 자연을 위한 노력이나마 계속해본다.
엄마와 스페인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거실에는 화분 가득 피어난 푸른 파질 향이 퍼져있었다. '언제 크나.' 눈독 들이며 쳐다볼 때는 나 몰라라 하더니 이렇게 선물처럼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다니!
우리 집 바질은 화분에 심겨 노지 바질처럼 쑥쑥 자라지 못하기에 한 달에 한 번씩만 주인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느리지만 성실한 친구이다. 그리고 주인을 잘 못 만나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니 바질 잎을 꺾어 토마토, 치즈와 곁들이거나 페스토를 만들 기회가 생기면 응당 그 인고의 시간을 고맙고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무엇이 원래의 주인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공병을 뜨거운 물에 소독해 준비했다. 덕분에 적어도 오늘, 일회용품 하나는 줄인 셈이다. (물론 텀블러도 사용하고 천가방으로 장을 보고 분리수거도 철저하게 했다는 사족을 붙여본다.)
사실, 혀는 자극적인 맛을 원하기에 사실상 마트에서 파는 바질 페스토를 좋아한다. 재료를 준비하고 공병을 소독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건너뛰는 건 물론이거니와 짭조름하고 고소한 바질향에 혀끝이 옴싹 옴싹 하다. 하지만 시판 바질 페스토 용기 뒷면에 붙여진 라벨지에서 짐작 가능한 저가 소금과 오일, 바질 잎이 아닌 바질향 첨가물을 알고도 묵인하기 껄끄러워 가능할 때 하나씩 만들어본다.
'쓰레기를 안 만들겠다!'는 말도 안 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소소한 성공이랄까. 그리고 성공이라고 하기엔 미약할 정도로 간단하다. 집에 뒹굴러 다니는 약간의 치즈, 마늘과 소금, 올리브 오일을 듬뿍 넣고 아기 주먹만 한 바질 잎을 견과류와 온데 섞어 갈면 끝이다.
'쓰레기를 안 만들겠다!'는 말도 안 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소소한 성공이랄까.
공병에 차곡 담고 빈틈 사이에 맛이게 익어가라는 주문을 넣어 조리대 위에 올려놓았다. 시간과 조금의 수고로움이 만들어내는 고소하고 근사한 맛이다. 내일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추수 감사절이다. 한 달 뒤에는 크리스마스이다. 그 한 달의 시간을 오늘 만든 바질 페스토가 향긋하게 채워주길 소망해본다.
시간과 조금의 수고로움이 만들어내는 고소하고 근사한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