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고 따뜻하고 포근한 새 옷을 사고 싶다며 불타오르는 욕구를 어떻게 알았는지 PC, 모바일 세계에서는 연말이라느니를 들먹이며 어서 지갑을 열라고 재촉한다. 뇌 속에 감시 카메라를 달았는지 잠시의 유혹에 살짝 발만 담가볼까 하고 들어간 웹사이트 광고가 덕지덕지 화면을 채우고 있다.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 척, 못 이기는 척 장바구니에 하나하나 물건을 담는다. 유혹이 넘치는 세상이다.
뜨끔하다.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으로 찔리는 구석이 다르지만 나는 어제 보았던 <플라스틱으로 기어들어간 소라게> 기사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꺼내어 본다.
최근 많은 패션 브랜드에서 친환경 패션, 지속 가능한 소비라는 키워드로 마케팅을 시작해 '비건 섬유', '친환경 섬유'등을 사용했다는 제품들을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그리곤 휴대폰 액정에 번쩍거리며 해당 상품을 드러내 놓고 '장사'를 하려 든다. 여기에 넘어가려다가도 번쩍 소름이 끼친다. 아니, 2주에 1번씩 수십 개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서 '지속 가능한 패션', '지구를 생각하는 소비'라는 표현을 들먹이다니. 이런 위선적인 경우가 어딨을까 싶다. 거기에 덧붙여서 비건 패션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아리송하다. 무엇이 지구를 위한 소비란 말인가?
그 중심에 있는 섬유 산업, 특히나 생산량과 폐기량 자체를 먼저 살펴보자. 한국섬유개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합성 섬유 생산량이 6157만 톤이며 면은 2543만 톤을 차지한다. 전년도 대비 총생량은 5.6%, 약 260만 톤이 늘었다. 인구가 늘었기 때문에 생산량이 늘었다는 합리적인 의심도 가능하지만 매년 생산량과 소비량의 차이에서 오는 과잉생산도 늘고 있어 2017년도에는 그 양이 704만 톤에 육박한다. 다시 말해 소비되는 양보다 생산되는 양도 많아서 재고로 쌓아두거나 버려야 하는 게 전 세계적인 설정이다. 거기에 우리가 지겨워서, 헤졌다는 이유로 버리는 의류 폐기물까지 더하면 더욱 심각하다. 이 정보를 듣고 보니, 세계 의류의 50% 이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중국 섬유 공장들에서만 매년 석탄을 태워 약 30억 톤에 가까운 대가 오염물질을 내뿜는다는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의 발표가 이상하지 않다.
소비되는 양보다 생산되는 양이 많아서 재고로 쌓아두거나 버려야
그러니 친환경 소비, 지속 가능한 패션 등과 같은 키워드가 반가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흔히 보이는 비건 패션, 그 대체품으로 제시되는 화학 섬유와 일부 천연 섬유가 지구를 위한, 우리를 위한 대체품이 될 수 있을까?
나는 'No'라고 답하겠다. 동물 학대 부분은 살짝 논점에서 제외시켜두고 정말 순수한 환경적인 부분에서 합성 섬유는 생산하는 과정에서 대단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여기서 '탄소보다 더 강력한 메탄가스를 내뿜는 소와 양 등은 친환경적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할 듯싶다. (나 역시도 궁금했었다.) 이 물음의 답은 '목축업의 주된 목적'이 무어냐에 있다. 그것은 '식량'이다. 소가죽은 대부분 소고기를 얻기 위한 도축 과정을 지나고 얻게 된다. 가죽을 위해 소를 기르고 죽이는 일은 전체 그림에서 비교하자면 아주 적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시장 거리 좌판에서 파는 소가죽 벨트가 얼마나 흔해졌는가. (그렇다고 비윤리적인 동물 사육과 가죽 채취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태닝이라 불리는 과도한 가죽 가공에서 일어나는 환경 문제도 심각하다.)
그러니 일부 패션 브랜드 업체에서는 시대 흐름이라는 핑계로 원가는 절감하고 브랜드 이미지는 트렌드에 얹어 가는 '꿩 먹고 알 먹는 마케팅'이 될지 모르겠다. 화학 섬유가 세탁 시에는 미세 플라스틱을 내보내고 분리수거가 되지 않은 채 버려지면 수백 년이 걸려 땅 속에 머무리는 사실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물고기 속 미세 플라스틱, 환경 호르몬은 눈에 안보이니까! 그러니 비건 패션이 지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동물복지를 위한 선택임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천연 섬유가 온화한 생산 과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면화 1킬로그램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물이 자그마치 2만 리터가 필요하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하루 물 소비량이 282리터인 것과 비교하자면 비교가 될까? 거기에 매년 증가하는 면직물 요구량을 맞추기 위해 면의 재배면적은 늘어간다. 혹여나 상품 가치를 잃을까 모종에 뿌리는 살충제 양도 늘어만 간다.
그렇게 20가지 가공 공정을 거치고 다이옥신까지 생산한 면직물과 화학섬유의 마지막이 아름답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빨다 빨다 찢어지고 헤진 옷가지들이 분리수거와 재활용을 거치지 못한다면 불에 태워진다. 세상에 언제 존재했냐는 듯 붉고 뜨거운 열을 내뿜으며 사라진 그것들은 온실 가스, 다이옥신과 같은 유해 물질로 흔적을 남기고 암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적게 사야 한다. 두 장 사고 싶은 걸 한 장만 사고 당장 사고 싶은 옷을 몇 달 뒤에 다시 고민해보자. 물론 이 말을 하는 나 역시도 화면 속에서 반짝이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는 하루에 몇 번은 고민하는 일이다. 소비가 미학인 시대에서 매우 실천하기 어렵다는데 동의한다. 여러 가지 뉴스와 자료를 살펴보고 스스로 내린 결론은 '어떤 소재의 옷을 입었는지로 가타부타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생산된 옷인지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구입하려는 브랜드가 패션 사업에서 불필요한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지속가능한의류연합(Sustainable Apparel Coalition)에 가입되어 있는지만 확인해도 '나름 환경을 고민하는군.'하고 브랜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SAC의 회원사는 SAC의 자체적인 환경 평가를 통해 생산품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발생하는 오염물질, 화학물질, 토양의 오염 정도 등을 종합 평가하는 Higg index를 받고 생산 과정에 반영하기도 하기도 한다. 대놓고 자기네들 옷을 사지 말라고 광고하는 '파타고니아'브랜드도 여기에 속해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행동들이 장기적으로 하나씩 늘어나면 21세기에 소멸되었다고 섣불리 판단했던, 기업의 공익적 신념을 녹인 제품과 회사가 늘어나지 않을까. 나는 소비자로서 좋은 지구를 만들고자 하는 진심 어린 회사를 사치스럽게 소비하고 싶다. 그러니 다시 물건이 인간의 선택을 받는, 회사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현실을 꿈꾸며 나부터 장바구니를 비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