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반복하는 고민, 마음에도 훈련이 필요해
운전 중에 듣는 팟 캐스트 프로그램은 일상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손바닥 위에 놓은 작은 기계를 툭툭 건드릴뿐인데 차 안은 현실과 다른 세상이 되어 버리곤 한다. 특히 몇 년째 듣고 있는 유명 개그 우먼 2인조의 한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한다. 조그마한 키에 아담한 체구를 가진 두 사람이 내뱉는 말은 발음이 또렷하고 쉼 소리에 군더더기가 없어 귓구녕을 맴돌다 튕겨나간 적이 없다. 착착 감기는 그 말들을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하루를 상상하게 하고 웃음을 부르며 무릎을 탁! 하고 칠만한 혜안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 팟 캐스트의 코너 중에서도 가장 애정 하는 시간을 말하자면 이렇다. 고민자가 사고 싶은 물건과 사고 싶은 이유를 소개한다. 하지만 어떤 다른 이유 때문에 그 물건을 사길 고민 한다. 그래서 살까? 말까? 수십 번 반복한 고민을 고민자가 이야기하면 진행자가 살지, 말지를 결정해주는 코너다. 21세기, 넘쳐나는 물건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내용에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나마저도 고민에 빠져든다. 사연에 소개된 일상이 쉽고 편리해지는, 심미안을 만족시킬 물건들을 상상하면 세상 깊은 주름이 미간에 들여오고 지갑에서 카드를 당장 뽑아 들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다 깨닫는다. 그 물건들은 팟 캐스트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고 나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상이다. 참, 다행이다.
아, 그럼에도 '무언가를 돈을 주고 사고 사용한다는 것은' 허공 속으로 흘러들어 가는 팟캐스트 같지 않아 여전히 내 속을 애걸복걸하게 만든다. 마치 혜성처럼 나타나 마음속에서 별이 되는 소비재들. 옷이며 장신구, 가방같이 내 몸에 착 붙어 의상이 가지는 기본적 기능을 더해 심미적 만족감을 전해주는 물건들. 호텔 레스토랑 요리를 만들어 줄 것만 같은 조리도구들. 하다 못해 매일 쓰는 치약이며 비누, 샴푸까지. 수많은 재화들을 스쳐가고 흘깃거리고 주무르는 일상이 반복되면 생각한다. 소비란 것은 사회적 동물이라 지칭하는 나 같은 인간이 사는 이 세상, 특히나 물물 교환이 아닌 화폐의 시대에는 필수적 생존 행위이고 미래지향적 본능일지 모른다.
그러니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늘도 온라인 쇼핑 사이트 장바구니에 물건을 들였다 보냈다를 반복한다. 아무리 '미니멀하게 살자'라고 되뇌는 나로서도 막을 수 없는 소비 욕구를 어찌 부정하겠는가.
요즘 나의 장바구니 아이템은 필라테스 짐볼의 공기를 충전하는 자동 펌프기다. 단순하게 필라테스 센터용 짐볼, 가정용 짐볼을 나눠 2개를 사용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은 잠시 내려놓길 소망한다. (물론,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운동을 하라는 냉소섞인 말들도 사양한다.) 나는 '재화보다는 경험을 소유하는 삶'을 지향하니까.
그것의 연장선에서 짐볼은 1개면 충분하다. 필라테스 센터와 집이란 두 공간에서 하나의 짐볼만을 사용하면 된다. 조금 더 편리하자고 짐볼을 2개 사자니 생산 과정에서 들어가는 노동력(분명 Made in China일 것이다), 배출되는 오염 물질과 소비된 후 버려지는 쓰레기들이 불편하다. 짐볼 공장을 운영해본 적이 없으니 정확한 수치는 확신하지 못하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는 대기 오염을 일으킬 것이고 포름알데히드는 생산자의 암 발생률을 급격하게 늘여줄 것이다. 생산 기계를 돌리기 위해 사용되는 석유며 전기도 거저 얻지 못할 테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온 짐볼을 마트에서 집어 올 때도 박스, 비밀 포장지를 버리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하고 운이 안 좋아 구멍이라도 나게 되면 일반 쓰레기 봉지에 담겨 빛도 없는 지하 세계로 흘러들어 가거나 불에 태워진다. 한 물건이 탄생하고 소비되는 과정은 달라도 결국 최종 목적지는 같다. 무덤 속이다.
초능적 힘으로 병든 지구를 구하는 슈퍼맨도 아니고, 환경 보호를 외치며 세계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환경운동가도 아닌 일개 개인인 나로서는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이 없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기엔 너무 미비하다. 그렇다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행진하는 많은 물건들의 모습을 보고 가진 불편한 생각이 의미 없다고 치부하지도 않는다. 대단한 영향력이 있어야만 행동의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살고 있다.
아, 너무 멀리 온 것만 같다. 아무튼 이 짐볼이란 게 지름이 60cm가 넘는 고무공이라서 바람을 팽팽하게 넣은 채로 들고 다니기엔 한계가 있다. 곰돌이 인형처럼 귀엽기라도 하면 들고 다닐 맛이 날 텐데 저거 들고 엘리베이터라도 탔다간 주변 사람들을 고무공으로 튕겨내는 파렴치한이 될까 두렵다. 그래서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짐볼에서 공기를 빼어 들고 다닌다.
그러니 수동 에어 펌프로 팔과 다리를 아래 위로 움직여 짐볼을 탱탱하게 만드는 행위를 일주일에 최소 2번은 한다. 겨우 2번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2번씩이나 된다. 바람을 넣기 한 번, 두 번, 세 번이 지나고 피스톤 운동을 반복하다 보면 동력의 근원이 되는 근육들은 지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믿음엔 미세한 균열이 생겨버리고 그 몇 분 사이에 '에이씨, 자동 에어펌프를 살까? 말까?' 욕구가 튕겨 오른다. 욕망엔 빈틈을 들켜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욕망엔 빈틈을 들켜서는 안돼
그나마 센터에선 공용으로 사용하는 대형 에어펌프가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센터에서도 집에서 사용하는 공기 주입기와 같았다면 이미 AA 건전지 2개로 작동되는 자동 공기 충전기를 샀음이 분명하다. 그렇다 집에서 사용하는 공기 주입기는 짐볼을 샀을 때 함께 온 무료 사은품이다.(사실 이 플라스틱 덩어리가 무료로 따라온 것도 불편했다.) 미술 시간 물통을 생각나게 하는 주글 주글한 저 주름을 밟았다 놓았다, 5분을 반복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 말은 특별한 도구가 없어도 시간과 노동력만 투자하면 짐볼에 공기를 주입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편리함과 불편함 사이의 선택이다.
편리함과 불편함 사이
일주일에 2번, 5분씩. 나는 편리함과 불편함 사이에서 불편을 선택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생활하는데 잠시 불편할 수 있지만 더 다양한 가치를 읽을 수 있다 믿는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짐볼 위에서 균형을 잡는 동작을 취하는 듯 불안하다. 몸에 있는 근육 하나, 잠시 편하자고 자세가 흐트러지면 기다렸다는 듯 휘청거리는 짐볼 운동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선 집중을 해야 한다.
정신도 훈련이 필요하다. 아, 아직 정신 쪼랩인 나는 계속해서 흔들린다. 어김없는 유혹의 5분을 이번 주도 끈질기게 버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