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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입니다 Jun 12. 2020

2020년 6월 11일

날씨 : 샤워하고 돌아서면 샤워하고 싶은

기록자 : 뽈     


아끼는 물건 상당수를 남겨둘 상자에 넣었다.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반드시.




아무렴. 다시 돌아갈 것이다, 반드시.


라는 마음가짐으로 한 치의 의심 없이 한국에 온 지 어느덧 두 달.


‘반드시’라는 3음절의 단어는 확실히, 그동안 효과적인 버팀목이 돼 주었다. 그 세 글자는 영국으로의 귀환을 향한 단호하고도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자 드디어 마주할 수 있게 된 가까운 이들에게 그늘 대신 허허실실하며 내보이기 용이한 면목인 동시에 그들과 나 자신에게 하는 선언으로 작용했다. 격리 기간과 그 직후 겪어온 깊은 무력감에 허덕이면서도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리진 않았던 것은 '반드시' 덕분이다. 이 마법의 단어는 내가 내게 내린 동아줄이고 지푸라기다. 반드시, 돌아간다.     

 

그러나. 영국 내 록다운이 완화되고도 적잖은 시간이 흐른 지금, 확진자 수가 천 명대로 줄고 사망자 수가 백 명 안팎으로 줄어든 지금도 나는 런던행 비행기표를 사지 않은 채 당초 예정했던 출국일을 조금씩 미루고 있다. 항공사 앱에 접속해 날짜와 가격을 확인하며 혼자 출국일을 정했다가 뒤집는 일을 하루에도 십수 번씩 한다. 온몸에 선명하게 써놓았던 반드시가 살짝 희끄무레하게 꾸물거린다. 꾸물거린다.      


왜.     


당혹스럽다. 굉장하게 의지적이었던 내가 고작 몇 주 새 사뭇 달라졌다니. 우물쭈물하고 있다. 꾸물거린다. 그런데 이유를 맥 짚듯 턱 짚어낼 수가 없다. 한국 생활의 만족도가 큰가? 아니. 여기서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끼는가? 일부는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크지. 그럼 뭐야. 개똥밭에 굴러도 본국이 낫다는 건가.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건 전부 거짓이었나. 그러나 사실 가장 당혹스러운 부분은, 처음부터 나는 내가 이럴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왜.

왜 그럴까.

의지박약이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나일까. 그러지 않고서야 이럴 수 있나.     


회사 상황과 영국 내 사정 때문이라고 변명해볼까. 좋아. 우선 대량 해고 사태를 막는 긴급 조치로써 영국 정부가 내놓았던 임시 해고(Furlough Leave) 지원 정책의 기한 만료가 임박했다. 그렇다. 앞선 글에서도 그랬고 가족이나 지인들에겐 ‘휴가를 받아 들어왔다’며 둘러댔으나 정확히 말하면 나는 4월부터 ‘임시 해고’ 상태에 놓여있다. 직역하니 어쩐지 부정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Furlough Leave는 양적 완화의 일환이다. 코로나 여파 탓으로 재정적 위기에 부닥친 회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너도나도 정리해고(Redundancy) 카드를 만지작거리자 실업률 폭등을 우려한 정부가 이를 제지할 목적으로 발동한 대응 정책. 내용인즉 고용주가 노동자들을 임시 해고 상태로 두면 노동자 임금의 일부를 정부 예산으로 얼마간 보전해주겠다는 약속이다. 4월 말부터 시행된 이 정책의 시효 기간은 이미 한 차례 연장된 바 있어서 더 이상의 연장을 기대하긴 어렵다. 더욱이 양적 완화도 한계점이 있는 법. 회사들은 내려놨던 정리해고 카드를 신속하게도 재차 꺼내 들었다.      


나 역시 며칠 전 회사로부터 정리해고 관련 메일을 받았다. 메일에 첨부된 공문에 따르면 내가 속한 F&B 부서 정규직 44명 중 24명이 일자리를 잃을 예정이며, 통틀어서는 전 직원의 과반 이상이 회사를 떠나게 된다. 록다운 직전 일자 기준으로 수습 기간을 이제야 막 통과한 신입 중의 신입이자 한시적 비자를 소지한 비유럽 출신 외국인인 나, 의 이름은 과연 생존자 명단에 오를까, 아니면. 살생부에 오른 내 이름을 보고서 고개를 내젓거나 혹은 끄덕이며 심사할 얼굴들을 헤아려본다. 답을 알 것 같긴 하다만 아무튼 흥미로운 일이다. 어디 당최 상상이나 해볼 수 있었나. 남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 노동법을 이런 처지로서 경험하게 될 줄을.      


한편 그새 영국 내 록다운은 꽤나 느슨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자유로이 외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일 수도 있다. 국내 여행이 가능해졌고 집회도 열린다. 해수욕객으로 바글바글 뒤덮인 브라이튼 비치의 모습, 불합리한 죽음과 차별 타도를 외치는 시위자들이 뒤덮은 런던 시내 모습은 최근 커뮤니티 내 가장 큰 화젯거리다. 이게 왜 화젯거리냐면, 영국은 오늘 자로 누적 확진자 수 총 29만, 그리고 누적 사망자 수 4만 명을 기록한, 여전히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나라이므로.      


그래서 감염이 두렵다는 말인가. 별로.

그럼 왜. 해고가 두려운가. 약간. 그러나 다른 일을 찾으면 된다.

그러면 왜.

문만 열리면 된다며. 문이 열렸는데 꾸물거리는 건 왜야.

그게 요즘 내가 끊임없이 하는 생각이다.

왜가 왜의 꼬리를 물고 왜냐고 묻고 또 다른 왜를 부른다. 저기 말야, 왜야.

그러나 왜는 부르는 소리에도 묻는 말에도 이렇다 할 답을 하지 않아서 나는 이렇다 할 답을 듣지 못하고 잠든다. 그건 요즘 내가 하는 일이다.      





한동안 뜸하다 싶더니 꿈꾸는 밤이 점점 늘고 있다. 리버풀 스트리트역을 가득 메운 출근길 인파 속,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는 나. 아이디 카드를 찍어 호텔 직원 전용 출입문을 열고 시큐리티 오피스를 지나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미소를 건넨다. 나선형 철제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어, 그런데 끝이 없다. 왜 이래. 이제 문이 나와야 하는데. 나올 때가 됐는데. 아이고, 이러다간 지각이야. 여유롭던 발이 점차 재게 움직이다 두 칸씩 훅훅 뛰어 밟는다. 그런데도 계단은 줄어들지 않는다. 외려 늘어난 것 같다. 왜지. 걸어 내려온 쪽을 올려다보니 환하고, 아래를 내려다봐도 환하다. 캄캄하지 않아서, 환해서 무섭다. 나는 땀과 공포에 흠뻑 젖은 채 헐떡인다. 어떡하지, 왜 끝이 없어. 끝이 왜 안 보여, 어떡하지. 그런데 문이 나오면. 과연 열릴까, 그 문은? 문이 열리면. 들어갈 수 있나, 나는?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갈 것인가, 곧바로? 또 꾸물댈 것인가, 문이 열린대도?


... 왜?



그게 요즘 내가 꾸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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