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일을 겪게 된다. 때론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 사고도 겪게 되고, 끝내 내 맘처럼 안 풀리는 일에 속상하기도 하고, 그래서 좌절하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내겐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큰 아픔, 큰 슬픔이 찾아온다 해도, 우리의 세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 때론 그것이 너무 잔인하고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것이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그래도 시간이 흐른다는 것. 삶은 계속 된다는 것.
우리는 또,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
(중략)
감독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때론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아픔이 당신을 찾아와도, 삶은 계속 된다는 사실. 이야기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많은 것들,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많은 것들도, 결국은 놓이게 되어 있고 버려지게 되어 있고, 그렇게 놓이고 버려지는 순간, 우리의 삶은 또 계속된다는 사실을 ...
-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리고 기적 편, <이야기와 나> 中
살다 보면 최악의 날도 있어.
허나 최고의 날도 있기 마련이지.
그게 바로 인생이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더라도 인생이 끝장난 건 아니야. 그 말대로 인생은 호락호락 끝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고오쿠도 서점 아저씨 말을 빌자면, 살다 보면 최악의 날도 있고 허나 최고의 날도 있기 마련이랬다. 지금의 내게 정말 최고의 날이란 게 오긴 하는 걸까.
- 일본 드라마 「노부타를 프로듀스」 中
2.
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애니메이션은 실제 사람이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려진(만들어진) 캐릭터와 공간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현실에서 불가능하거나 혹은 상당한 돈을 들여야지만 가능한 장면들이 비교적 쉽게 가능해진다.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되는 유치한 이야기인 것 같아도, 보는 나는 매번 감탄하고 눈물 짓고 꺄르르 웃는다. 한편 애니메이션이 주는 망상과 공상에의 즐거움 외에도 한 편 한 편이 짧아서 좋은 점도 있다. 요새는 길게 무언가에 집중해야한다는 생각부터 들면 지쳐서 하기가 싫어(계절 탓도 있을까)지는데 그래서인지 짧은 호흡으로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내게는 적절한 것 같다. 스스로 꽤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집중하기가 어렵다. 업무용으로 기록하고 있는 '타임시트'의 최근기록을 보니 한 번에 세 네시간 정도 긴 호흡으로 일한 것보다는 한 시간, 한 시간 반 짜리의 기록이 훨씬 많았다. 절름대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뭐 좋은 방법 없을까나
3.
작년 즈음부터 시골쥐 프로젝트라는 이름까지 지어가며 귀농을 꿈꾸던 나였다. 그런데 그 계획을 실행할 시기를 매우 앞당겨야할 때가 온 것 같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코로나 녀석 덕에 꾸역꾸역 집에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정신으로 작업을 하다보니 오히려 학교에서 할 때보다 뭔가 더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졸업반이라는 스트레스와 등떠밀림도 한몫했겠지마는.
장소 하나 바꾸는 것이,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마치 꿈을 잊는 것처럼 깨끗이 잊어버리게 만드는 데 그렇게 많은 기여를 한다면, 그거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 칼 필립 모리츠 <안톤 라이저> 中
한 평 한 평이 소중한 지금의 야림하우스는 주방과 화장실을 제외하면 주 활용공간인 방 하나를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활용하고 있다.
1. 사무공간
작은 창문이 붙은 면에는 책장과 책상과 프린터가 놓여있어, 그 구간에서 일을 하거나 컴퓨터 작업을 한다. 최근에는 온라인 화상회의를 할 때에도 곧잘 이곳에 앉아 진행하고 있다.
2. 작업공간
뒷편으로 보이는 흰 벽면과 트인 바닥에서는 내가 하는 작업을 위한 작업공간이다. 바닥에 일단 방수포를 깔고 커다란 수조와 다양한 사이즈의 플라스틱 보울들, 천, 나무판 등등을 준비하면 작업 준비 완료다. 그렇게 그곳에서 종이를 만들고, 완성된 종이는 앞에 펼쳐진 흰 벽에 차곡차곡 붙여놓는다. 매일 매일 눈에 닿는 곳에 작업을 둠으로써 생각의 흐름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다.
3. 휴식공간
마지막으로 베란다 문 옆으로 침대가 놓여 있다. 매일 밤 나는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노래를 듣거나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친구들과 전화를 하다가 잠든다. 혹은 맥주를 홀짝이기도.
일을 하게 되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된 최근 3개월 간, 아니 길게는 2년이 넘도록 엉덩이 붙이고 작업도 하고 밥도 해먹고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했던 이 집. 이렇게 지낸지도 꽤 오래 됐건만.. 이 공간에서 요즘 나는 (코로나인가 순간 두려웠던 적이 있을 정도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그런 날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심호흡을 하며 밖을 하염없이 걷는다. 아직은 카페에서 장시간 앉아있기에는 코로나가 조심스럽기 때문에 여전히 재택근무를 멈출 수가 없다(일본은 6월 14일 현재 46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 작은 방에서 다 해야한다. (방금 알아보다가 깨달은 사실인데, 제대로 알고자 일본식 면적 계산 단위인 '조(畳)를 평방미터로 환산해보니 4평이 안나오는 것 같다. 설마. 그렇게 작다고?)
시골쥐 야림은 이사를 하게 된다면 나가노에 가고싶었다. 작업의 주 원료가 되는 닥나무를 직접 기를 땅이 있는 작은 집을 빌려 그곳에서 살며 작업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지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저런 것들을 고려한 끝에 지금있는 하시모토도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은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결정을 해야하니 상담이라도 받아보자.' 싶어 부동산에 연락했다. 그저 예약을 하고 차근차근 알아보려던 것이 ... "어차피 동네에 계시는 거면 그냥 부동산으로 지금 오시죠?"... 가 됐다. 2시간 남짓 부동산의 담당자 K는 하시모토에서 열심히 내가 종이재료인 닥나무를 기를 수 있을 만한 낡은 집을 찾아봐주셨다. (나보다 왜 더 열심 이신 것 같지. 기분탓일까, 나는 왜 이렇게 덤덤해) 2시간의 상담 끝에 내 손에는 다섯 채의 매물의 정보가 적힌 다섯 장의 종이가 쥐어졌고, K님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부동산을 나섰다.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번화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동네 주변을 계속 관찰하며 걸었다. 걷는 내내 느낌표는 없고 물음표만 늘어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부동산에 가서 매물들을 보고 이사를 하게 된다면 좋은 일일 거라고, 작업에도, 일에도 더 집중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될테니 잘된 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쳐오니 두렵고 싫고 피하고 싶어졌다. 왜지. 그 뒤에 감춰진 돈 문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부담감, 책임감이 봉투를 든 내 손을 타고 마음 깊이 침투해온다. 숨쉬기 힘들었던 건 이런 집이 좁아서도, 코로나 때문도 아닐까. 그냥 별 수 없는 인간이라서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오는 나약함 같은 걸까.
고민하지 않는, 고민이 들지 않는 일만 우리 주변에 있다면 어떨까. 내가 가야한다고 믿는 곳에서 애초에 멀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숨통 트일 수 있는 곳에 있었다면, 내가 뭘 잘 하는지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겠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이 이미 탄탄대로라면 어떨까. 고통스러운 일, 피하고 싶은 일, 귀찮고 성가신 일, 두려운 일 없이 언제나 유쾌하고 행복함만 가득하면 어떨까. 그래 나도 알아. 그런 질문 자체가 하등 쓸모없지.
사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일을 겪고, 어떤 선택을 해도 갈림길에서 어떻게든 힘들고 슬프고 괴로운 일은 만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살아야한다. 그것이 '왜 우리는 자꾸만 슬픈 일을 만나야하는 건가?'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가 됐든,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잘 가고있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서가 됐든, 혹은 너무 즐거운 나머지 계속 만끽하고싶어서가 됐든. 우리는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침대 이불을 덮으며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근거린다던 순정만화 속 야림은 이제 내 곁에 없다. 매일을 충실히 사느라 지쳐 눈만 감으면 잠의 세계로 빠져드느라 여념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