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결혼하고 맞는 아내의 첫 생일. 그전부터 아내가 줄기차게 요구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편지였다. "선물 말고 편지?" 살짝 부담스러운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나름 괜찮은 제안이라 생각했다. 일 년에 겨우 한 번 아닌가. 이 날만큼은 편지를 쓰며 결혼 생활을 복기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일종의 '남편 건강검진'이라 생각했다. 세밀하게 몸속을 들여다보는 대장내시경처럼, 남편의 마음가짐, 태도 등에 이상소견은 없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다. 로맨틱하면서 경제적이기까지 하다.-대장내시경의 비유는 그렇게 로맨틱하진 않지만- 정성껏 쓴 편지를 건네는 모습을 상상하며 선뜻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쉽지 않은 작업(?)이란 걸 깨닫는 데는 채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아내의, 아내에 의한, 아내를 위한 글로 귀결되어야 하다 보니 쓸 내용이 많지 않았다. 매년 천편일률적인 편지가 생산되었다. "결혼해 줘서 고맙다.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 내가 잘못한 거 많지? 미안하다. 앞으로 더 잘할게." 몇 년을 써도 외형만 다를 뿐이지 결국 축약해 보면 위와 같았다. 그러다 결혼 7년 차인 작년, 창작의 고통이 최고조에 달했다. 당연한 서사를 당연하지 않게 써야 하는 부담감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편지를 주지 못했다. 다행히 그때는 어떻게 넘어갔다. 그래서 올해는 무조건 줬어야 했다. 하지만 또 그러고야 말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 'Oops I did it again'이 떠올랐다.
작년도 올해도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 있냐며 다그치는 아내. 난 유구무언이었다.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미안하다며 편지를 쓰긴 쓸 거라고 했으나, 반강제로 헌납하는 모양새가 돼버리니 오히려 화만 더 북돋을 뿐이었다. 사실 편지 쓰는 것 자체는 문제 되지 않는다. 머리를 쥐어짜 어떻게든 문장을 만드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매년 똑같은 글을 또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그렇게 싫었는지, 나도 모르게 엉겁결에 이렇게 말해버렸다.
"최근에 자기를 생각하며 느낀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글로 써볼게. 그것도 2편이나."
왜 이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데 궁지에 몰리니 괜한 소리를 한다. 하지만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을 때도 있는 법. 아내는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고, 그럼 그렇게 하라며 얼마간의 유예기간을 주었다.
그날 이후 닥치고 글쓰기에 돌입했다. 출근 후 커피 마시는 시간과 점심 먹고 남는 시간에 오롯이 글만 썼다. 창작의 고통은 없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들을 소재감아 술술 쓰면 되었다. 다만 문자 그대로 술술만 써질뿐이고 읽을만한 문장은 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멀리한 것을 자책하며 지우고 다시 쓰기를 끝도 없이 반복했다. 고생스러웠지만 내가 전달하고 싶은 바를 온전히 전하고 싶었다. 머릿속의 이야기와 감정을 자음과 모음으로 바꾼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아 몰라. 될 테면 되라지.'
글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읽는 내내 즐거워했다. 예상외의 반응이라, 억지로 좋아해 주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글을 읽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보조개가 움푹 파여있었고 입꼬리는 자연스레 올라가 있었다. 됐다. 그녀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성공이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 바로 두 번째 글 쓰기에 돌입했다.
이것이 아내를 생각하며 글을 쓰게 된 시작이다. 처음에는 아내에게 보여주려고 썼다. 하지만 한두 편 쓰다 보니 그녀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저장하고픈 욕심이 생겼다. 두 가지에서였다.
하나, 시나브로 잊히는 아내와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싶었다. 엉엉 울기도 하고 배꼽 빠지게 웃기도 했던 모든 시간들. 그 소중함이 이루 말할 데 없다. 당시에는 그 경험과 생각이 워낙 유별나 평생 갈 거라 여겼지만 뒤늦게 회상하려니 온데간데 찾을 수가 없다. 몸소 경험했음에도 이렇게 까마득하다니. 빠르게만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할 뿐이었다. 야속하다 못해 무서웠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지. 아내와의 추억은 나의 재산이다. 급여가 통장 잔고를 스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아내와의 추억은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그래서 글로 남기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글이라는 전당포에 맡겨 놓고 언제든 원할 때 찾아보려고 한다.
둘, 아내를 더 이해하고 싶었다. 결혼 이래 그녀는 늘 아내라는 역할에 가리어져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면 세상이 모두 검듯, 아내라는 안경을 쓰고 보니 그녀를 이해하는 폭이 좁았던 게다. 그러나 글을 쓰며 편협했던 시각이 확장됨을 느낀다. '아내 KSH'가 아닌 '인간 KSH'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되더란 말이다. 덕분에 아내가 나를 위해 하는 일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고 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만 9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아내를 알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매우 당연하다. 하나의 사람, 하나의 인생을 오롯이 알아가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인가. 또한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더 성숙해짐을 느낀다. 고로 어떻게 보면 지금의 아내에 대한 글들은 어쩌면 나에 대한 글이 아닐까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