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에 눈을 뜨기 시작한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어제저녁 '준비는 잘 돼 가고 있어?'라고 물어보더라고. 그리고 나를 쳐다보는데, 그 눈빛은 마치 '네가 준비하고 있을 리가 있겠냐. 그러니깐 내가 이렇게 신호를 주는 거라고'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난 억울했어. 요즘은 정말 시간이 날 때마다 편지를 쓰고 있거든. 심지어 회사에서 커피 주문하려고 서 있는 시간까지도 할애하며 핸드폰으로 쓰고 있어. 그러니 자기의 그 눈빛을 읽었을 때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 어제는 너무 억울해서 '나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거든!'이라고 거의 말할 뻔하다가 가까스로 입을 닫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두 가지 이유가 있거든.
첫째. 생일날 자기를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해서야. 아무것도 준비를 안 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보여주려고.
둘째, 내가 벌써부터 편지를 쓰고 있다고 하면 그 기대치는 하늘까지 올라가겠지. 그럼 편지를 읽었을 때 실망할 가능성도 크지 않겠어? 최대한 자기의 기대치를 낮추려 해. 그래야 편지가 다소 엉성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올라갈 테니깐.
자기도 이런 방법을 자주 쓰잖아. 이를 테면 저녁 식사 때 말이야. 음식을 맛있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식탁으로 내오기 전까지는 갖은 변명과 핑계를 다 대지. 싱겁다느니 짜다느니 재료가 없었다느니 말이야. 온갖 밑밥을 다 깔아놓고 실제로는 맛있는 음식을 맛보게 하지. 상대적인 만족도를 높이는 이 방법을, 자기는 저녁식사 때마다 사용했고 나도 이 전략을 알면서도 매번 당하고 있어.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린데, 자기의 음식솜씨는 정말 대단해. 장모님 때문인지, 태어나고 자란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 재료 고유의 맛을 잘 살리고 감칠맛을 표현하는 데 일가견이 있어. 또한 한 번 먹어본 음식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곧잘 따라 하잖아. 천재성이 있다고 생각해.
미식가인 자기 덕분의 편향적이었던 내 음식의 스펙트럼은 산과 들, 바다까지 그 영역을 넓혔어. 이제는 거의 먹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었지. 게다가 건강까지 고려한 식단 때문에 나의 식습관은 해마다 좋아졌어. 반대로 자기는 나 때문에 입에 대지도 않았던 과자, 빵, 음료수, 국수의 맛을 알게 되었고 말이야. -이 부분은 미안하게 됐어-
어찌 되었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은 우리 삶의 행복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것도 오랫동안 즐기고 유지하려면 건강이 필수겠지? 그러니 운동 게을리하지 말고 특히 혼자 있을 때는 끼니를 때우는 정도로만 대충 차려먹곤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나라의 산해진미와 세계의 맛있는 음식들을 자기와 꾸준히 탐구해나가고 싶어. 지금까지는 강원도의 들기름 고등어 두부와 미얀마의 샨누들이 국내, 국외 각각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순위도 바뀔 날이 올 거야. 콜럼버스가 되어 맛의 신대륙을 발견하는 항해를 계속해나가자. 그러니 늘 건강해야 해. 알았지?
2025년 1월 10일
맛에 눈을 뜨기 시작한 당신의 남편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