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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생일] 편지 07_작은 새와의 싸움

유혹을 이기고 당당히 개선문으로 들어오는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by 알파카

매일 쓰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군. 몰래 쓰는 것도 그렇고, 소재가 안 떠오르기도 하고. 첩첩산중이었어. 결국 위기가 찾아왔지. '이쯤에서 포기할까' 하는 찰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안에서 작은 새가 불쑥 튀어나와 이렇게 말했어.


'그 정도면 됐어. 최선을 다했잖아. 편지를 6개나 썼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니? 그중 잘 쓴 거 두 개만 갈무리해서 줘. 어차피 니 아내는 네가 편지를 여러 개 준비한 것을 모르잖아.'


'그럼 그럴까?' 하려는데, 우리 결혼이 10년째라는 것이 떠올랐어. '그럴 순 없지. 올해는 다른 해와 다르게 준비하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해보자'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어.

그러자 내 안의 작은 새가 지지 않고 말했어. '야, 생일까지 아직 많이 남았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 머리를 더 쥐어짜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잘 들어봐봐. 너 지금 편지 7개 썼다고 했지? 올해는 편지 두 장을 하나로 압축해서 주고, 나머지 5개는 저장해 두는 거야. 그래서 앞으로 아내 생일 때마다 하나씩 고쳐서 주면 되잖아. 제갈공명의 비단주머니처럼 말이야. 완전 대박이지 않아? 그럼 5년 동안 편지 걱정은 없는 거야.'


솔깃했어. 눈과 귀가 번쩍 뜨이더군. 나만 입 싹 닫고 있으면 되는 거였어. 엄청난 내적갈등에 휩싸였지. 지킬 앤 하이드가 되어 오랜 시간을 괴로워했어.


몸부림치다 용단을 내렸어. '내일도, 내일모레도 이런 고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오늘은 쓰고 보자!' 그리고는 훠이훠이 팔을 휘저어 그 작은 새를 쫓았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계속될 작은 새의 유혹에서 또 이길 거라고 장담을 못하겠더라고.


어쨌든 고비를 넘겼고, 계속 편지를 쓰려 해. 장담할 순 없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려고. 그래! 결혼하고 맞는 자기의 10주년 생일인데 그냥 평범하게 할 순 없지. 사랑해.


2025년 1월 20일

유혹을 이기고 당당히 개선문으로 들어오는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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