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자기에게 놀림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한 달 전쯤 있었던 얘기를 해볼까 해.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어. 자기는 소파에 앉아 유튜브를 보고 있었지. 무지개 다리를 먼저 건너간 반려견 때문에 방송인 강원래 씨가 펑펑 우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리고 이런 내레이션이 흘러나왔어.
'하늘나라에 가 있는 반려견이 나중에 주인이 오면 가장 먼저 나와서 반겨준다고 합니다.'
자기가 늘 그랬잖아. 내가 먼저 죽으면 자기는 외로워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그래서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갈 거라고, 귀가 따갑게 얘기했잖아. 그래서 농담 삼아 말했지. 내가 하늘나라 가면 자기도 나와서 반겨줄 거냐고. 그랬더니 자기는 한치의 기다림도 없이 말했어.
"당연하지, 가서 반겨줘야지."
순간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자기가 팔다리를 양 옆으로 쫙 피고 위아래로 흔들며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어. 그런 모습으로 천국에 뒤늦게 도착한 나를 진심으로 반겨준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 하더라고. 눈물이 찔끔 나오더니, 이후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거야. 그릇을 닦고 있던 손이 얼굴로 올라오면 울고 있는 것을 들키게 되니, 수도꼭지처럼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도 못한 채 그냥 놔두었지. 온갖 인상을 쓰며 설거지를 했어. 또 힘차게 들썩이는 어깨를 감추느라 얼마나 힘들었던지. 들숨날숨을 최대한 깊게 하면서 들썩임을 감추었어.
그래도 한 번 터진 눈물은 쉽게 진정되지 않더라고. '발리에서 생긴 일' 있지? 거기에 조인성의 주먹울음신 기억나? 그와 비슷했다고 보면 돼. 다른 점은, 첫째 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는 점, 둘째 배우 얼굴의 완성도가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 셋째 나의 울음은 행복의 울음이었다는 거야. 천국에서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너무 좋았고, 슬픔과 걱정 없는 그곳에서 자기와 평생 놀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되더라고. 뭔가 딱 부러지게 설명을 못하겠는데...... 그냥 한 마디로 그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너무 반가울 것 같아. 잠시나마 그 상상이 현실처럼 느껴지더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던 거야.
그건 그거고 설거지는 설거지고.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로 그릇 정리와 가스레인지 청소까지 완벽하게 마쳤어. 울던 티를 내지 않으려 씻으러 간다고 말하고 곧장 욕실로 향했지. 머리 감고 세수를 하니 좀 나아지더군. 눈물의 흔적은 없앴지만 약간 충혈되어 있었어. 하지만 눈치채지 못하더라고. 내 연기가 자연스러웠던 게지. 아마 내가 울었던 것을 자기가 알았다면 분명 토닥토닥했을 거야. 그랬으면 난 더욱 울음보가 터졌겠지. 위로를 받으면 더욱 눈물이 나더라고.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소파에서 자기 말만 하는 당신. 난 한 귀로 흘려듣고는, 그냥 지긋이 자기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어.
'그래. 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다 이거지?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해. 이곳도 천국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 재밌잖아. 맛있는 음식도 많고 여행 갈 곳도 많고.'
설사 그런 '즐길만한 것'이 세상에 없다 하더라도 괜찮잖아? 자기는 나를 놀리는 게 세상에서 가장 재밌다고 했으니까, 나만 옆에 있으면 되잖아. 그리고 생일 기념으로 아래 자유이용권을 선물할게.
1년 남편 놀림/희롱/농락 이용권(유효기간:2025.02.14~2026.02.13)
마음껏 사용해. 단,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용해 줬으면 좋겠어. 그것만 약속해 줘.
2025년 1월 14일
언제든 자기에게 놀림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당신의 남편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