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일기] 01. 사람 사는 맛

김포 북변 오일장

by 알파카

"더 큰 거 없어?"

"아유, 여긴 그런 거 없어. 다 똑같아."


인견 옷을 파는 매장, 아니 천막 밑이다. 아내가 물건 고르는 사이 어떤 할머니와 남자 사장님의 대화를 엿들었다. 할머니는 이런 장터에 한두 번 오시진 않으셨을 터, 사이즈가 하나라는 것을 모르시진 않으셨을 게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씀하신 건 나중을 위한 그림이 아닐까? 글쎄, 한 번 지켜보자.


아니나 다를까, 사이즈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얼마에 깎아달라고 하신다. 할머니께서 가격 흥정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찰나, 남자 사장님은 단호하게 말한다.


"아, 그러면 적자여."


장군멍군, 용호상박이다. 난 감히 고수님들 근처에 갈 엄두도 못 내고, 갈치 눈으로 흘깃 보며 엿듣기나 할 뿐이다. 누구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옥신각신'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것을 '티키타카'로 본다. 웬만한 SNS 영상보다 재밌고 흥미롭다.


그 사이 아내는 인견 잠옷 세트 한 벌에 만원, 반바지 두 벌을 육천 원에 결재했다. 세상에. 반바지 한 벌에 삼천 원이라니. 웬만한 떡볶이 한 접시보다 싸다. 내심 감탄하며 검은색 봉다리를(표준어는 '봉지'다) 넘겨받고 아내 뒤를 졸졸 따라나섰다.


다음 도착한 곳은 장터 내의 국숫집이다. 녹두전, 비빔국수, 콩국수를 주문했다. 다해서 만육천 원. 어제 아파트 상가에서 족발 중자를 이만칠천 원에 먹었는데(그것도 저렴한 축에 속하는 족발집이었다) 거기서 무려 만천 원이 더 빠진다.


아내는 쇼핑이 자못 만족스러운가 보다. 음식이 나왔는데도 봉지 안의 물건을 다시 꺼내보고는 흐뭇해한다. 난 이 사이를 놓칠세라 녹두전의 바깥쪽 부분을 재빨리 몇 점 집어먹었다. 바싹 구워진, 가장 맛있는 곳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전통시장이야 말로 녹두전의 바깥쪽 부분이 아닐까? 시내 중심가에 있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 외곽에 위치한 이런 장터가 훨씬 맛있잖아!'


음식 맛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 사는 맛이다. 오일에 한 번 열려서 그런지 특유의 간절함이 묻어나고 방문층도 워낙에 다양하다. 개성이 담긴 말투와 행동 속에서 저마다 삶에 담긴 애환, 해학, 억척스러움이 툭툭 튀어나오니 어떻게 사람 사는 맛이 나지 않을 수 있으랴. 아는 맛이 무섭다고 했다. 사람들도 그걸 알기에 원근 각지에서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7월 무더위 속에서도 말이다.


집으로 왔다. 아내가 삼천 원짜리 인견 반바지를 입어봤다. 좌우 기장이 다르다. , 그마저 완벽했으면 이 가격이 아니었겠지. 맛도 다양한 맛이 있지 않나. 이런 쓴맛도 사람 사는 맛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사는 게 편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연신 거울을 비춰본다. '그런다고 한쪽 기장이 늘어나지 않아, 그냥 입어'라고 말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202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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