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펜을 내려놓으려고 한다.
어떤 책에서 봤다. 글을 잘 쓰려면 먼저 글을 잘 쓸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난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다. ‘좋은 글, 감사의 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선, 좋은 삶, 감사의 삶, 반성의 삶을 살아야겠구나.‘ 실제 그런 삶을 추구하며 소재를 발굴했고 또 그 글이 거짓이 되지 않기 위해 글과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일 년 3개월이 지났다.
한편 잘 쓰고 싶은 욕심만큼 실력은 왜 늘지 않는지. 인생의 많은 시간을 책과 멀리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뭐 하나 특출 난 것이 없는 나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어휘력과 문장력 대신 시간을 쏟아붓는 방법으로 글의 퀄리티를 향상시킬 수밖에 없었다. 다소 미련한 방법이긴 하나 괜찮다. 좋은 추억과 생각을 글로 옮기는 건 내게 줄 선물을 포장하는 것이니까. 되려 감사하다. 게다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할수록 글이 말끔해지는 재미도 있으니, 시간 쏟기를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최근엔 아니다. ‘시간이 좀 아까운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제 두 달 후면 한 살 더 먹고, 내일모레면 40대 중반이고, 회사라는 조직의 속성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게다가 AI란 놈은 언제부턴가 등장하여 사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인 시간을 오롯이 글 쓰는 데만 사용하는 게 과연 맞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시간 배분을 재고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같은 중요한 시기에-여느 시기라고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겠지만- 상당한 시간을 소소한 취미에 쏟아붓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였다. 업무 지식도 습득해야 하고, 영어도 해야 하고, 손 놓았던 독서도 해야 한다. 할 일이 태산인데 그간 너무 순진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해야 할 일‘에 대한 교통정리 하자면, 아마 ‘글 쓰기‘는 최하위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고로 시간을 할당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아마 눈곱만큼일 텐데, 앞서 얘기했듯 나는 엉덩이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 정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결코 만족할 만한 글이 안 나온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중요한 일들에 부여한 시간을 빼앗아야 하는데, 자칫하단 글쓰기도, 다른 어떤 것도, 이도저도 안 될 조짐이다. 장고 끝에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할 시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라고 ’경쟁력‘, ‘효율성’, '생산성', '자기 개발', '시간관리' 등 이런 정나미 없는 단어로부터 자유하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겠나, 먹고는 살아야 하는 걸. 나만 빼고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으니, 나도 장단에 맞춰 칼춤 한 번 춰줘야겠다. ‘칼춤' 하니 마침 ‘칼의 노래‘ 김훈 작가님이 떠오른다. 과거에 그분이 하신 인터뷰가 있다. 지금 나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대목이 있어 그 부분만 발췌한다. 나처럼 구구절절하지 않으시다. 시원시원한 촌철살인 답변이다.
오효진 (前 SBS 보도국장)
문학은 이런 때 뭘 합니까?
김훈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합니까. 아니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을 구원해? 난 문학이 구원한 인간은 한 놈도 본 적이 없어! 하하…. 문학이 무슨 지순(至純)하고 지고(至高)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 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하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월간조선의 2002년 2월호에 실린
당시 인터뷰 내용
일 년여간 정말 행복했다. 아마 브런치 운영팀에서 이런 알람을 보낼 것이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주기적으로 오는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하자. 다만 펜을 아예 놓는 건 너무 매정하니, ‘쓸만한 글쓰기 소재가 떠올랐을 땐 메모정도는 해도 좋다‘로 타협점을 찾았다. 메모가 점점 길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떻게든 선은 넘지 않겠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될 것 같다.
2025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