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피소드] 15. 아내는 부재중(3)

미안한 말이지만, 아내가 행복하지 않았었길 바란다.

by 알파카

9월 10일부터 아내와 떨어져 지냈다. 그리고 내일, 드디어 그녀가 온다. 어지간히 오랜 시간이었다. 참으로 길었던 밤이었다. 특히 지난 추석 연휴 때는 외로움과 궁상스러움이 최고조에 달했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마지막 3분처럼, 나의 모든 감수성이 클라이맥스를 향했었다.


물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노력도 많이 했다. 10살짜리 애도 아니고,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향해 달려가는데, 아내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고 삶이 무너져서야 되겠는가. 뭘 하는 게 귀찮아서 그렇지 뭔가를 한다고 하면,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그런 멋진 사람들처럼 말이다.


삼겹살을 사 와 집에서 구워 먹기도 하고, 좋아하는 과일을 부지런히 깎아먹고, 카페에 가 에스프레소도 한 잔 마시고, 낮잠도 원 없이 자고, 축구도 마음껏 보고, 평소보다 더욱 정갈하게 차려입고 교회도 가고.


위 행동들은 내 ‘행복 필살기’들이다. 아내가 없으니 사는 재미도 없고 신명도 없길래, ‘설마 이것까지 했는데, 행복하지 않을 리가 있겠어‘ 하고 꺼낸 비장의 카드였던 것이다. 그러나 보란 듯이 실패했다.


아무리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도 예전의 행복의 수위만큼 올라오지 않았다. 시도는 계속되었지만, 즐거웠던 순간은 한때였고 나의 표정은 곧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때론 따분했고 때론 허무했다. 그 와중에 ‘외로움‘은 눈치도 없이 내 주위를 계속 어슬렁거렸다.


이로써 모든 게 분명해졌다. 나의 모든 행복의 순간에는 그녀가 있었으니, 그녀가 내 행복의 주범(?)이다. 이번에 아내와 떨어져 있으면서 귀납적 방법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었다.


아내가 맞은편에 앉아 같이 상추쌈을 욱여넣고 있었기 때문에 삼겹살이 더 맛있었고, 내가 혼자 축구를 보더라도 옆에서 잔소리를 해주니까 더 스릴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봐도 아내가 옆에 있으니 더 재밌었고, 낮잠을 자더라도 소파에 같이 누워 같이 일어났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던 게다.


아내가 이렇게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했는지 몰랐었다. 반대로 아내는 어땠을까. 나의 빈자리를 절실하게 느꼈을까? 아니면, 잘 지냈을까?


그 속마음이 궁금하긴 한데 따로 묻지는 않겠다. 만에 하나 잘 살았다고 대답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미안하긴 한데, 행복하지 않았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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