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전문점이 아닌 진짜 평양에서 냉면을 먹는 그날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조영남 '화개장터'
섬진강은 겨우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지만, 올여름, 난 대한민국을 가로질렀다. 부산에 있는 처갓집에 다녀온 것이다. 왕복 860km 거리.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나와 조수석에 앉아있는 아내는 우리나라 서북 끝에서 동남 가장 끝 지역을 오갔다.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김포공항에서 항공편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이름은 김포공항인데 주소는 왜 서울시 강서구인지 의문이다- 처갓집에 머무는 동안 장인어른, 장모님을 자차로 모시고 외출하는 재미가 있어 굳이 차량으로 이동했다.
끝없는 고속도로 위, 나뭇가지처럼 갈라지는 나들목. 김포에서 시작한 여정은 그렇게 용인, 여주, 충주, 문경, 상주, 대구, 밀양을 거쳐 부산까지 이르렀다. 1970년대부터 본격 개통하기 시작한 고속도로는 분명 전 지역을 하루 생활권으로 만들었고, 김포-부산 거리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그날 하루가 무지 피로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중간중간 졸음쉼터가 있어 원한다면 쪽잠을 잘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별주부전'의 토끼가 된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 없다. 한국인은 별 수 없나 보다.
도로는 바지단이 아니니 줄일 수 없다. 대신 시간은 최소화할 수 있다. 차가 밀리는 시간을 최대한 피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새벽 4시에 출발했다. 와, 이 정도 시간이면 거의 혈혈단신으로 가는 거 아냐 싶었는데, 웬걸. 시작이나 다름없는 수도권 제1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아이고 대한민국의 부지런한 사람들이 다 이리로 모였네 싶을 정도로 차가 많았다. 다행히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하니 부지런한 사람들이 부쩍 줄었다. 그다음부턴 유유자적이었다.
그래도 용인에 살 때 부산에 몇 번 간 이력이 있어 김포에서 용인까지만 가면 길은 꽤 익숙하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은 충주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왼쪽으론 월악산, 오른쪽으로는 속리산 자락인데, 그 모습이 자못 압권이다. 이곳은 지날 때마다 감탄한다. 특히 이번에는 이른 아침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산허리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그 위로는 새하얀 햇살이 쏟아지니 신비롭기가 이를 데 없었다. 반면 산세는 험하니, 정말 옛사람들이 경성에 가기 위해 문경새재에 모여 같이 갔다는 말이 이해가 갈 법했다.
김포에 사니 차로 대한민국을 가로질러 가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풍경도 다 보는구나 싶다가 문득 남북으로 분단된 선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한반도 가장 서북단에 있는 신의주에서 출발하는 여정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평양, 개성을 지나 파주, 고양, 김포, 그다음부터는 내가 평소에 가던 길로 가면 되겠다. 와, 그럼 족히 10시간은 넘겠다. 그래도 통일이 되어 북녘땅에서도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면, 그 어디를 가든, 몇 날 며칠이 걸리든 무슨 상관일까.
심훈 선생님은 민족이 독립을 이루는 날,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고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 죽는다고 하셨다. 난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정말 즐거이, 누적되는 엉덩이의 고통도 감사하며 기꺼이 그 길을 운전하겠다. 환호성을 외치며.
아참,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평양과 개성 시내는 잠깐 들를 생각이다. 평양에서는 시원하게 평양냉면을 들이켜고, 개성에서는 개성만두를 포장해 차 안에서 먹으며 가리라. 그리고 예상컨대 저쪽 땅에도 분명 충주-문경 구간만큼이나 멋지고 아름다운 경치가 있을 것이다. 맛과 경치를 심심찮게 누리며 간다면 장시간의 길이 그리 고되지만은 아닐 것이다.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더 이상 김포가 우리나라의 최서북단에 있는(도서지역 제외) 행정구역이 아니기를 바란다. 평양냉면 '전문집'이 아닌 진짜 '평양에서 냉면'을 먹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혹시 아나. 이 '김포일기'가 마무리되고, 북쪽의 어느 지역에서 후속 편이 이어지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