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일기] 05. 16번 길, 그 식당(1)

작은 할머니의 배춧국 맛을 내는 곳

by 알파카

나의 어휘력이 평균 이하라는 사실은 잊곤 한다. 그럴 땐 수준 있는 에세이가 답인데 최근 읽은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도 그중 하나이다. 여기 나오는 풍성한 어휘, 특히 사십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고어와 사투리 덕분에 현재는 매우 겸손해진 상태이다. 어휘력으로 기고만장한 사람 어디 없나. 이 책 한 번 읽어보시길. 단, 고 김서령 작가님에게 혼쭐 날 각오 단단히 하시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면 될 것을. 이놈의 귀차니즘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 '아는 척'이 누적되면 내용의 재미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책을 내려놓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책만큼은 쉽게 놓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내가 알지 못했던 찰지고 정겨운 단어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당시 친족 집단의 시대상, 안동이라는 지역적 특성 속에서 당신의 어머니께서 손수 해주셨던 음식을 회상한다. [천생 글쟁이란 이런 사람이구나]를 대번에 알 정도로 글재주가 정말 뛰어나시다.


나도 옛날에 먹던 배춧국이 떠올랐다. 작은 할머니가 해주신 배춧국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작은 할머니 집과 울타리 하나로 붙어 있었는데, 부모님이 늦게 오시니 초등학교를 마치면 난 거의 그곳에 있었다. [대청을 빌려주니 안방도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처럼 그곳에서 화투도 치고 생떼도 부리고 잠도 퍼질러 자고 밥은 당연한 것 마냥 매 끼니 먹었다. 그때 먹은 모든 음식이 그립지만, '배춧국'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당시엔 그게 맛있는 줄도 몰랐다. 매일 먹다시피 했으니까. 커보니 알겠더라. 그런 맛을 내는 곳은 흔치 않다는 것을. 여기저기서 배춧국을 맛보았는데, 작은 할머니의 손맛을 따라올 곳은 없었다. 심지어 흉내 내지도 못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 미슐랭 3 스타 음식을 매일 먹고 있었던 것이었구나.'


맛을 흉내 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메주 때문이다. 할머니 댁은 주방에 손 닿을 만한 높이에 서까래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고 메주를 쑤면 위는 늘 메주 차지였다. 또는 볏짚으로 엮여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다. 다른 곳에서는 그런 메주를 쑤지 않으니 결코 그런 맛이 나올 리 없다. 그러니 일반 식당에서 할머니의 배춧국 맛을 기대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려, 한동안은 도둑놈 행세를 하며 살았다.


(아내가 싫어할 짓을 했다. 나의 글을 읽으면 왜 이렇게 서두가 기냐고 맨날 지적을 하는데, 이번 글이 그중 제일이다.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김포로 입주하기 전, 아내가 하루 종일 이사 올 집을 청소한 적이 있었다. 난 회사를 마치고 헐레벌떡 픽업하러 갔으나 아내는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걸음을 떼기도 힘들어 용인 집까진 도저히 못 가겠고 근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려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보리밥을 주문했다. 난 같이 딸려 나온 배춧국을 먼저 한 입 떠먹었다.


뭐지? 살짝 쓰다고 느낄 정도의 짭짤함과 깊고 진한 국물맛, 그리고 뒤따라오는 구수함은? 나의 뇌세포들은 과거의 기억을 거슬러 30년 전의 맛의 저장고에 도착하여 지금의 맛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그래, 이거야! 작은 할머니의 배춧국(맛) 비슷해! 국물을 한 번 더 들이켜니 과거의 기억들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따라온다.


윤동주 시인이 <별 헤는 밤>에서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본 것처럼, 나도 음식을 먹으며 생각나는 것들을 고요히 떠올려 보았다.


작은 할머니의 거친 손, 작은 할아버지의 보조개, 담배 냄새, 메주, 서까래, 아랫목, 아랫목이 너무 뜨거워 누르스름하게 그을린 장판, 그 위에 이불, 그 이불속에 늘 따듯하게 보관된 작은 할아버지가 드실 공깃밥, 작은 할머니가 해주셨던 총떡과 만두, 작은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꽁치캔, 앞마당, 날 위해 만들어주신 나무 썰매, 썰매에 쇠를 달궈 새겨주신 내 이름, 황소와 여물, 창고 안에 보관된 농기계, 밤나무......




3년 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작은 할머니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신기하게도 장례식장에서 나온 국은 육개장도 아니고 쇠고기 뭇국도 아니고, 바로 배춧국이었다. 작은 할머니는 마지막까지도 나를 위해 배춧국을 준비하셨나 보다. 말씀드리기 죄송스럽지만, 맛은 그냥 그랬다.


이런 나를 하늘에서 보시고 안 되겠다 싶어서 당신의 배춧국 맛과 가장 비슷한 곳으로 인도하셨다. 물론 할머니의 손맛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할머니를 떠올리고 그리워하기에는 충분한 맛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됐다. 이제 맛타령은 그만하자. 반찬 투정 할 나이는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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