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자식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다.
사월 초 어느 날.
완연한 봄날씨다. 베란다에 햇살이 가득하다. 봄바람은 한량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빨래들이 건조대에 널려있다. 아무런 걱정과 근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따듯한 햇살과 봄바람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시선을 옮겼다. 아등바등 살다 주말 오후 겨우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나. 당면한 문제와 걱정을 회피하고 있을 뿐 여전히 그들의 영향력 밑에 있다. 이런 나와 대비되어 저 빨래 친구들이 더욱 행복해 보인다. 얄미울 정도다. 그러면 안 되지만 시비를 걸었다. 다소 비꼬듯 말했지만 사실은 부러워서 그랬다.
"좋겠다 야. 봄 햇살을 그렇게 듬뿍 받으니 얼마나 좋으니. 게다가 넌 선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되잖아."
빨래들이 합창했다. "야 그럼 너도 나가서 햇빛 쬐. 뭣하러 집구석에 있어." 정곡을 찔렸다. 끄응 차. 천근만근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참 좋다. 대기를 가로질러 도착한 복사열을 느낀다. 머나먼 우주에서 왔는데 어찌 이리 적당한 온도를 배달할까. 상품이 완벽하니 반품할 필요가 없다.-설사 반품 신청을 하더라도 태양 물류센터까지 갔다 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봄 햇살에게 말했다. "날 쏘고 가라."
그들은 힘차게 날 통과했다. 내 가슴부위를 지나면서 이내 품고 있었던 나쁜 것들도 같이 데리고 나갔다. 본의 아니게 밖으로 끄집어진 친구들을 봤다. 걱정과 근심이었다. 그 옆에 귀차니즘과 무기력도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왜 끌려 나왔는지 영문도 모른 채 멍하니 있었다. 봄 햇살이, 썩 꺼지지 못할까 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째려보니 그제야 반대쪽으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그리고는 봄 햇살이 말했다. 걱정과 근심은 마음속의 부정적인 생각을 먹고 자란다고, 그냥 놔두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사람의 인생을 좀먹는다고 했다. 귀차니즘과 무기력은 그 정도까지 나쁜 친구들은 아니지만 내가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곤 하니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난, 그랬냐고 몰랐다고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봄 햇살의 조언을 받아들여 한때 친구였던 그들과 과감히 헤어질 결심을 했다. 용기가 나지 않아 문자로 보내려고 했는데 지질하고 싶지 않아 직접 말하기로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허공을 향해 연습 삼아 외쳤다.
"가라, 이 나쁜 친구들아."
옆에 있던 서양수수꽃다리가 비웃었다. '아이고 무서워라. 그래가지고 잘도 헤어지겠다'하는 표정이었다. 기분 상했지만 좋은 피드백이니 그대로 받아들였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두 배 더 큰 소리로 외쳤다.
"꺼져라! 이 어둠의 자식들아!"
후아. 마음이 훨씬 가볍다. 벌써 많은 일들이 해결된 기분이다. 비장한 각오로 그들을 찾아가는 중이다. 길가의 봄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에게 '건투를 빈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좋은 친구들. 그들 덕분에 오늘은 꼭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