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코에도 봄은 오는가
때와 장소를 불문한 나의 입냄새 때문에 아내는 늘 고통받는다.
그때마다 아내는 나라를 잃은 듯 이렇게 말한다.
빼앗긴 코에도 봄은 오는가
아내 코에는 봄을 가져다주지 못하지만 2025년도의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시아 동계올림픽, 한파와 폭설, 계엄령과 탄핵 등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봄이 말한다. "뭐 어쩌라고." 타격감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세상이란 무대에 등장했다. 두둥.
이만치 약속을 잘 지키는 존재가 있던가. 세상은 요지경이나 봄은 요지부동이다. 매년 한결같은 모습으로 찾아오는 그가 고맙다. 나는 봄의 이 신실함 덕분에 와신상담을 배웠다.
새벽 출근길, 매일같이 벌어지는 추위와의 사투 속, 칼날 같은 겨울바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공들인 머리 위에 울며 겨자 먹기로 후드 모자를 쓸 때. 통근버스 안, 패딩까지 입은 풍채 좋은 남자분 옆에 앉아 허리가 옆으로 휘어진 채로 1시간 반을 갈 때. 정전기 때문에 레깅스와 바지가 달라붙어 하체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는데, 난 그걸 모르고 다닐 때.
이러한 역경과 수치심에도 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참자" 하였다. 왜? 무슨 일이 있어도 봄은 올 거니깐. 이 믿음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봄은, 날씨와 계절 그 이상이다.
나에겐 약속이고 희망이고 동기부여였다.
여보, 세상의 봄은 희망이고 약속인데, 자기 코에는 절망과 실망을 가져다줘서 미안하오. 또한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찾아오는 봄인데, 당신 코에는 다른 의미로 한결같은 냄새를 가져다줘서 미안하오.
아마 이번 생은 당신의 코에 영원히 봄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 같으오. 용서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