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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아] 05 세상은 요지경, 봄은 요지부동

빼앗긴 코에도 봄은 오는가

by 알파카

때와 장소를 불문한 나의 입냄새 때문에 아내는 늘 고통받는다.

그때마다 아내는 나라를 잃은 듯 이렇게 말한다.


빼앗긴 코에도 봄은 오는가

아내 코에는 봄을 가져다주지 못하지만 2025년도의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시아 동계올림픽, 한파와 폭설, 계엄령과 탄핵 등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봄이 말한다. "뭐 어쩌라고." 타격감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세상이란 무대에 등장했다. 두둥.


이만치 약속을 잘 지키는 존재가 있던가. 세상은 요지경이나 봄은 요지부동이다. 매년 한결같은 모습으로 찾아오는 그가 고맙다. 나는 봄의 이 신실함 덕분에 와신상담을 배웠다.


새벽 출근길, 매일같이 벌어지는 추위와의 사투 속, 칼날 같은 겨울바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공들인 머리 위에 울며 겨자 먹기로 후드 모자를 때. 통근버스 안, 패딩까지 입은 풍채 좋은 남자분 옆에 앉아 허리가 옆으로 휘어진 채로 1시간 반을 갈 때. 정전기 때문에 레깅스와 바지가 달라붙어 하체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는데, 난 그걸 모르고 다닐 때.


이러한 역경과 수치심에도 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참자" 하였다. 왜? 무슨 일이 있어도 봄은 올 거니깐. 믿음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봄은, 날씨와 계절 그 이상이다.

나에겐 약속이고 희망이고 동기부여였다.


여보, 세상의 봄은 희망이고 약속인데, 자기 코에는 절망과 실망을 가져다줘서 미안하오. 또한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찾아오는 봄인데, 당신 코에는 다른 의미로 한결같은 냄새를 가져다줘서 미안하오.


아마 이번 생은 당신의 코에 영원히 봄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 같으오. 용서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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