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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Feb 13. 2024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인생을 사계절로 나눈다면 40대는 늦여름이 끝나고 초가을쯤 열매를 맺어야 할 때라고 한다.


올해로 40의 불혹을 맞이한 내가 이토록 심장이 아프고 괴로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나 보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꾀부리지 않고 매 순간 내 자리에서 주어진 것들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것 같은 나에게 지금 남겨진 것이 어찌 보면 뼈아픈 '상실감' 뿐이로구나 싶은 이유 말이다.


지나온 삶을 통해 열매를 맺어야 할 시점에 도리어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차라리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그 마음뿐인 것이다. 




지난가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을 만큼의 괴로움으로 가득 찬 내 모습에 견딜 수가 없어 의원면직 사직서를 내고 학교를 나왔다.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이상적인 교육의 모습을 각자 공허하게 외쳐댈 뿐 학교가 떠안은 어려움과 고통에 세상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남겨진 내 삶을, 내 진심을 쏟아부을 용기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세상 밖으로 나가 남들처럼 평범한 회사원이 된다면 그냥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되겠지 싶었다. 해마다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과 학부모님 그리고 동료 선생님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나에게 주어진 직무에만 충실하면 되는 거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생은 참으로 예측 불가능해서 재밌다. '직무' 하나만 보고 일에 집중할 있을 같아 들어갔던 회사에서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다가 퇴사를 결심하게 것이다. 그간의 경험치에 근거해서는 도무지 견딜 없는 상황들을 마주해야만 했던 것이다. '좋은 사람' 되려다가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공부'와 '일'은 '생존'을 위해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는 관념이 팽배해 있으니,

직장에서 내가 잠시 경험했던 일들 따위야 그저 당연히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었으리라 생각 정리를 해본다.


하지만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이 같아서 만난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어본 것 같아 한없이 설레고 행복했던 나로서는 감당하고 견뎌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음은 분명하다. 


직업은 생존을 위해 갖는 것이고, 매달 내 소유의 통장으로 약속된 금액만 지불해 주면 그것으로 그만인 일이건만...

구태여 일을 통해 의미를 찾고 싶고 가치 없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괴롭다고 느껴지는 나의 이 오래된 생각의 습성을 나도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이 아무리 예뻐도 내가 생각하는 방식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불가능해진 것 같은 학교 안에서 내 진심을 쏟아낼 자신이 없어 학교를 뛰쳐나왔고,


내가 좋아하는 미술교육 관련 업무를 해볼 수 있다고 행복하게 들어갔던 회사에서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마음가짐으로 직무에 집중할 수 없다고 회사를 뛰쳐나온 마흔 살의 내 모습을 나는 어떻게 바라봐주어야 하는 것일까?


내 감정을 부정할 수 없고, 진심이 아닌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지도 않은 나란 사람이 앞으로도 영영 이 세계에 부적응한 존재로 남게 될까 봐 솔직히 두려웠다.


그런 나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하고 편안한 존재로 기억되어 있는 작가 류시화 님이 말을 걸어온다. 지금의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이렇게 적절한 타이밍에 건네어 준다.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의 제목부터 마음을 울린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옳다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겠지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작가의 말에 가슴깊이 와닿는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꾹꾹 맞춰내기가 너무나 힘들어 주저앉아 울고 싶은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끌어안고 공감해 주는 것만 같은 류시화 작가의 책을 만난 거다. 


나만 이런 감정 느끼며 괴로운 게 아닐 수도 있는 거다.


삶의 열매가 꼭 불혹에 꽃 피워야 하는가?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며, 모든 식물이 같은 시기에 꽃을 피워내지는 않듯 사람도 그러하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향기를 내는 꽃을 피워낼 운명이며 그 꽃을 피워내는 시기도 모두 다 다르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고 익숙한데, 

곰곰이 기억을 가다듬어 보니 2023년 바로 지난해 교실 안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저 나라는 꽃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지켜주며 아껴주는 것,

그게 나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것.


불혹을 맞이한 나, 그거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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