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은 마음을 지켜주는 약속입니다.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연필을 들고 하얀 종이 위에 바람 소리를 적고, 햇살의 따스함을 그려보았습니다. 풀잎이 속삭이는 말을 가만히 옮기고 나면, 하루가 더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어쩌면, 나만의 세계를 조용히 펼쳐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의 말과 소리들이 마음 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새 모양으로 나가는 그런 기분이었지요.
어린 시절에는 그저 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보고, 귀에만 들리는 것을 글자로 옮기는 일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소리들에도, 말들에도 처음 들은 이, 처음 그린 이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요.
어느 날, 누군가의 글을 읽고 그대로 따라 써 본 적이 있었습니다. 문장 끝의 쉼표 하나, 단어의 색깔까지 흉내 내며 써 내려가던 시간은, 어쩌면 닮고 싶다는 마음이었고, 사랑한다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작가처럼 쓰고 싶었고, 작가의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마음속에서 꺼낸 문장을 누군가 무심히 가져가, 다른 이름을 붙여놓은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야기에게도 주인이 있다는 것을요.
작가의 문장은 하루아침에 태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없이 지우고 고치며, 마음속 수많은 물살을 헤엄치던 끝에 건져 올린 문장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꺼낸 하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문장을 누군가 무심히 베껴 간 것을 보고, 이상하게 마음이 서늘해졌습니다.
이야기에도 체온이 있다는 것을, 마음을 다해 쓴 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진심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저작권은 마음을 지켜주는 약속입니다. 정성스레 만든 한 문장, 조심스레 그려낸 한 줄의 선, 한 곡의 멜로디, 한 장면의 영상에도 누군가의 시간이 고요히 스며 있으니까요. 노력과 사랑, 실패와 다시 시작한 마음까지도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창작자입니다. 어느 날은 쓰는 사람으로, 또 어느 날은 듣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아이의 동요 가사 한 줄에도, 할머니가 정성껏 엮은 바느질 무늬에도, 누군가의 숨결과 이야기가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아껴야 합니다. 함부로 가져가지 말고, 마음의 무게를 이해하려 애써야 합니다.
‘이건 내가 만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이건 그 사람이 만든 거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배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창작자로서의 윤리를 배워갑니다.
세상이 조금 느리더라도, 더 정직하게 흘러가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마음 위에 내 이름을 얹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내 문장을 만들 수 있기를. 그렇게 하나하나 지켜진 이름들이, 결국 더 자유롭고 건강한 창작의 숲을 만들어 줄 거라 믿습니다.
작은 이야기에도 이름이 있고, 이름이 지켜질 수 있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도 소중히 여겨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