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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May 19. 2020

22 꼬들꼬들함의 최고봉, 홍콩식 에그 누들

홍콩 밀크티와 곁들이니 여기가 홍콩이네!

탱글탱글 고무줄 같은 식감이 매력적인 면발

홍콩에서 꼭 먹는 음식 중 하나는 에그 누들이다. 완탕 몇 개와 건어물을 넣어 만든 국물로 이루어진 면 요리다. 속이 꽉 찬 완탕도 맛있고 느끼한 속을 가라앉히는 국물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는 면발! 반죽에 달걀을 넣어 만들었는데 탱글탱글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라면 먹을 때도 꼬들꼬들한 식감을 좋아해서 면발을 익히는 시간이 번갯불에 콩 굽는 시간만큼 짧을뿐더러 여열로 인해 면발이 점점 익으면 젓가락을 내려놓을 정도로 그 식감을 좋아하니 에그 누들에 빠지는 건 당연지사! 그래서 홍콩에 가면 1일 1에그 누들은 기본이고, 푸짐하게 먹기 위해 항상 라지 사이즈를 주문한다. 그뿐만 아니라 작년, 삼수이포에서 맛본 에그 누들은 오리알을 넣어 만든 반죽을 대나무로 치대어 극대화된 그 특유의 식감이 감동적이었다. 지금껏 먹어온 면 요리 중 세 손가락에 들며 홍콩에 또 오면 그걸 먹기 위해서라도 삼수이포는 꼭 가겠노라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한국에서라도 에그 누들을 먹기 위해 여행 마지막 날, 마트에서 에그 누들 한 봉지를 구입했다. 실타래처럼 얽힌 주먹만 한 에그 누들이 여덟 덩어리 들어있는 제품이었다. 혹시라도 부서질까 봐 갖고 있는 옷들로 칭칭 감쌌고 다행히도 그 형태를 그대로 한국에 도착했다.




갈 수 없어 더 생각나는 홍콩의 맛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쁘게 일할 때일수록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 그럴 때면 컴퓨터가 로딩되는 틈에 여행 사진을 보며 기분 전환을 한다. 그중에서 가장 자주 보는 곳은 다름 아닌 홍콩. 홍콩을 좋아하지만 이때 유독 홍콩 여행 사진에 마음이 가는 건 쉴 틈 없이 바쁜 지역의 분위기가 지금 내 상황과 비슷하면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지만 코로나19 탓에 지금은 할 수 없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근사한 카페와 서점을 돌아다니며 여유를 만끽한 시간이 그리워서 그런 것 같다. 그러한 마음이 안개처럼 짙게 깔린 오늘, 홍콩에서 맛있게 먹은 에그 누들을 해 먹야겠다. 국물은 건새우와 표고버섯, 목이버섯을 넣어 만들었다. 이 요리는 건더기 재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버섯을 현지에서 먹던 것보다 더 많이 넣었다. 면발은 홍콩에서 에그 누들을 먹을 때마다 '한 그릇 더 시킬걸'하며 그 부족함을 아쉬워했던 게 생각나 제조사에서 1인분이라고 제시한 것보다 많이 삶았다. 국물과 면은 따로 끓여서 그릇에 모아 담을 생각이다. 그때 함께 구입한 홍콩식 인스턴트 밀크티도 오랜만에 꺼냈다. 홍차, 우유, 설탕이 혼합된 제품으로 홍콩을 대표하는 밀크티면서 식사와 함께 자주 마시기도 했다.





바로 여기가 홍콩이구나!

에그 누들은 현지에서 먹던 맛 그대로다! 쫄깃쫄깃 탱글탱글한 식감이 마법을 부린 듯 나도 모르게 그 맛에 빠져 끊지 않고 쭉쭉 들이켰다. 에그 누들은 처음 요리해봐서 혹시라도 그 특유의 식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할까 봐 자신이 없었는데 이게 웬걸? 말 그대로 제대로 폭풍 흡입했다. 게다가 버섯의 쫀득쫀득한 맛과 풍미가 더해져 내가 좋아하는 식감이 배가됐다. 정신을 차린 건 면발을 1/3 정도 먹은 뒤였다.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 입 먹었다. 현지의 맛보다 건새우의 풍미가 조금 부족했지만 그 부분을 버섯의 향이 채워줘 만족스럽다. 그리고 시원한 밀크티를 한 모금 들이켰다. 여행 중에 간 식당의 풍경이 눈 앞에 그려진다. 면발을 삶는 냄비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로 뿌옇게 된 식당 주방이 보이고, 성조가 살아있는 중국어가 들리는 듯하고, 나처럼 혼자 온 손님이 내 옆 자리에 합석해 앉아있는 것만 같다. 그땐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 지금은 추억이 돼 즐거운 경험을 선사한다. 홍콩은 민주화 시위를 하고 있는 터라 코로나19가 해결되어도 가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쉽게 갈 수 없어 그리움이 더 크고 그래서 오늘의 요리가 더 특별하다. 다시 에그 누들을 먹고 밀크티를 마셨다. 아쉬운 마음만큼 이 한 그릇을 남김없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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