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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Apr 27. 2020

21 태국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그린 커리

현지에서 맛볼 수 없어 더 그리운 고소, 매콤, 이국적인 풍미의 조화

그린 커리는 무엇?

그린 커리는 태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커리 중 하나로 초록색 태국 고추(Green spur chilies, Green bird’s eye chilies 등)와 코코넛 밀크를 넣어서 연두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이 그린 커리를 알게 된 건 4년 전, 방콕 여행 중 마트에서 그린 커리 페이스트를 발견했을 때다. 똠얌꿍, 팟타이 페이스트를 살펴보다가 가격 할인 스티커가 붙여진 그린 커리에 눈길이 갔고 호기심에 장바구니에 넣은 것. 하지만 그린 커리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 맛을 알리 없었다. 맛을 모르니 요리도 할 수 없어 그린 커리 페이스트를 그날 이후로 쭉 주방 식료품 선반에 방치했다. 최근, 방콕으로 또 한 번 여행을 떠났다. 태국 음식을 좋아해서 ‘이번에는 현지에서 요리를 배워보자’며 쿠킹 클래스를 알아봤다. 운 좋게 메뉴를 취향대로 고를 수 있는 곳을 발견했다. 물론, 그린 커리를 신청했다. 그뿐만 아니라 클래스에서 ‘그린 커리를 제대로 만들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전날 현지인들이 많은 음식점에서 그린 커리를 맛봤다.




매콤한데 고소하고, 향이 독특한 맛

그린 커리의 상징인 연두색이 입맛을 당기기는커녕 재료 날 것 그대로의 맛이 느껴져 입가에 팔자 주름을 만든 채 ‘쩝쩝’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게 하는, 일명 ‘건강한 맛’을 떠오르게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비위를 간지럽게 하는 채소 맛이 강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자극 없는 밋밋한 맛도 아니다. 고추 때문에 매콤한데 코코넛 밀크가 그 매콤함을 고소하게 감싸줘 묘하게 매력적이다. 또 매운맛 특유의 날카로운 촉감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려줘 자꾸만 손이 간다. 단짠단짠의 조합이 입맛을 돋우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국적인 향신료까지 코를 자극해 바로 삼키는 게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 동안 그 맛을 곱씹게 하는 힘이 있다. 쿠킹 클래스에서 그린 커리를 꽤 만족스럽게 만들어 자신감을 얻은 나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린 커리 페이스트를 제조사마다 종류별로 구입했다.






페이스트로 간단하게, 입맛대로 만드는 그린 커리

유난히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뜨끈한 음식이 떠올라 그린 커리를 만들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린 커리는 초록색 태국 고추, 레몬그라스, 샬롯 등을 잘게 자른 후, 절구로 빻아서 페이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맛도 뛰어나지만 내게는 이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게 해주는 페이스트가 있다. 마늘과 고추, 삼겹살을 기름에 볶은 후, 그린 커리 페이스트를 넣고 농도를 보면서 코코넛 밀크를 부어 바글바글 끓였다. 배운 대로라면 해산물을 넣어야 하지만 냉동실에 없어서 내 입맛대로 재료를 바꿨다. 여기에 좋아하는 재료도 추가했다. 이국적인 향을 배가시키는 월계수잎과 고수, 씹는 맛이 좋은 새송이버섯과 달콤한 방울토마토가 그 주인공이다. 아, 종종 ‘고수가 어떻게 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그에 대한 답변은 이렇다. 집 근처 마트에서 1팩에 2천 원으로 판매하는 고수를 구입해 3~4일 내 먹을 만큼만 냉장 보관하고, 나머지는 잘게 썰어 1회 분량씩 냉동 보관하기 때문이다. 양이 너무 많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해봤는데 바쁠 때 꽤 괜찮아 매번 이렇게 한다. 물론, 신선한 고수만큼은 아니지만 그린 커리, 똠얌꿍, 팟타이처럼 불조리하는 요리에 같이 넣고 익히면 은은하게나마 그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다.



갈 수 없어 더 그리운 곳을 추억하게 만드는 요리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린 커리를 한 국자 떠서 밥 위에 부었다. 방콕에서 그랬던 것처럼 숟가락으로 밥과 커리를 한 입에 넣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 밀려왔다. 맛도 훌륭했지만 전 세계를 마비시켜 버린 코로나 19 탓에 방콕에서의 시간이 그리웠던 터라 감동이 더욱 컸다. 여행에서의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현지에 도착해서 장난감 동전처럼 생긴 교통카드를 찍고 탑승한 공항 철도에서 ‘무사히 도착했다’며 안도했을 때, 숙소를 나서며 ‘이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해볼까?’하고 흥분했던 때, 감각적인 카페와 레스토랑이 입점해있는 멋스러운 서점에 당도해 눈이 휘둥그레졌던 때, 호텔 조식을 건너뛰고 빈속으로 현지인 맛집을 찾아 나섰을 때,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는 오토바이와 눈치 싸움을 했던 때… 그 당시에 즐거웠던 순간은 물론, 다소 짜증 났던 순간들마저 전문가의 손끝에서 완성된 세련된 영상이 되어 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비록 인스턴트의 힘을 빌렸지만 그 덕분에 조금 더 오래 그린 커리의 맛을 음미하며 태국으로 다시 한번 여행을 다녀온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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