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는 틀렸지만 기분 전환에는 성공한 한 끼
분보남보는 삶은 쌀국수에 양념한 소고기, 숙주, 땅콩, 허브류를 넣고 비벼 먹는 베트남 남부식 요리. 하지만 이 요리가 유명한 식당들은 남부가 아닌 북부에 밀집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하노이 이외의 지역에서는 만나보기 어렵다고. 그러고 보니 2년 전, 내가 갔던 분보남보 맛집도 남부, 하노이에 위치한 곳이다. 분보남보는 대체적으로 달콤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특징. 허브 및 개성 강한 느억맘 소스가 들어가지만 자극적이지 않을뿐더러 자꾸만 손이 가는 감칠맛이 좋다.
분보남보는 2년 전 하노이 여행 이후로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맛이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맛있게 먹었다’는 것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인터넷을 찾아 그 맛을 되짚었고 그러던 중, 중요한 사항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면과 양념을 한 데 볶는 팟타이와 달리 이 요리는 양념과 국수를 각각 조리한다는 것. 국수를 따로 삶아 그릇에 다음 후, 그 위에 양념된 고기를 붓는 식이다. 다른 하나는 숙주를 익히지 않고 먹는 것. 숙주 날 것 그대로의 아삭함이 고기의 느끼함을 덜고 부족한 식감을 채워주는 게 포인트다. 레시피를 살펴보니 집에 있는 재료로 맛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원래는 소고기를 사용하지만 냉동실에 대패 삼겹살이 있어 그걸로 대체하기로 했다. 우선, 팟타이 소스, 생강가루 조금, 액젓 조금, 물을 섞어 양념을 만들고 양파와 마늘을 얇게 썰었다. 팬에 마늘, 양파를 볶다가 고기를 추가해 익히고, 양념을 부었다. 그런 다음, 고기에 양념이 배어 들도록 불을 줄이고 조금 조렸다. (양념으로 국수를 비벼야 하므로 너무 조리지 않는다.) 양념 고기가 완성되어 갈 때쯤, 다른 냄비에 면을 삶았다. 그동안 남편은 땅콩을 적당한 크기로 부수고, 접시에 고춧가루와 고수를 담았다.
황금연휴지만 (순전히 기분을 내려는 불필요한) 외출로 코로나19의 확산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한창 진행 중인 작업이 있는 탓에 자발적으로 집콕을 택했지만 이 좋은 날씨에 바깥공기를 마음껏 쐬지 못해 아쉽고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베란다에서 커피 한 잔 하며 기분을 내긴 했지만 그 마음을 달래기엔 부족했다. 분보남보를 해먹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였다. 해외여행 중에 맛있게 먹은 요리를 먹으면 기분 전환도 되고 그때의 추억도 떠올리며 남편과 즐겁게 대화도 나눌 수 있으니까. 비록 레시피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실패 없는) 시판 팟타이 소스 덕분에 만족스러운 분보남보를 완성했다. 국수가 얇아서 양념이 골고루 스며든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고수, 땅콩, 고춧가루를 추가하니 내 입에 딱 맞다. 분보남보를 먹으며 2년 전, 하노이 분보남보 식당에서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촬영한 영상을 보며 오랜만에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하며 식사를 즐겼다. 아, 그리고 사진을 보다가 그때 분보남보와 함께 소시지를 먹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다음번에는 그때 그 소시지와 비슷한 맛이 나는 소시지도 함께 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