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에서 먹던 그 맛, 그대로다!
늘 먹는 밥과 반찬이 싫증이 날 때가 있다. 색다른 게 먹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떠오르는 메뉴가 딱히 없는 그런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어본 냉장고. 그 속엔 어제 먹다 남은 순대 2/3인분과 골뱅이무침을 해 먹고 남은 채소들이 있었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쫄면도 남아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 쫄면은 예전에 삶은 콩나물을 듬뿍 넣고 양념장으로 버무려 신포동 스타일 쫄면을 해 먹고 남은 것 같다. 오호라! 마침 신림동 순대타운에 가서 백순대볶음 한 판 먹고 싶었는데 잘됐다. 냉장고 파먹기도 할 겸 간단하게 백순대볶음을 해 먹을 수 있겠다.
내 입맛에는 매운 순대볶음보다 백순대볶음이 맞는다. 고소한 들깻가루와 쫄깃한 쫄면의 식감이 한 데 어우러진 그 맛이 자극적인 음식보다 더 중독성이 강하다. 모처럼 먹는 백순대이고 무엇보다도 직접 만드니 이 두 가지 맛은 제대로 살려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채소부터 손질했다. 양배추와 당근을 채 썰었다. 청양고추도 조금 꺼내 송송 썰었다. 순한 맛이 특징인 백순대볶음이지만 없으면 섭섭한 매운 양념장도 조금 만들었다. 다진 파, 다진 마늘, 청양고추, 간장, 고춧가루, 들기름, 들깻가루를 적당량 넣어 섞었다. 백순대볶음을 먹다가 중간에 조금 물릴 때 찍어 먹으면 제격이다. 팬에 양배추와 당근을 넣고 익기 시작할 때, 쫄면과 물을 함께 넣었다. 쫄면이 익는 데 시간이 걸리는 데다 신림동에서 맛본 쫄면의 맛을 살리려면 중간중간 주걱으로 살짝 눌러가며 튀기듯이 조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쫄면이 거의 완성되었다 싶을 때, 순대를 넣었다. 순대는 따뜻하게만 데우면 충분하다. 들깨는 초반부터 넣으면 기름이 흘러나와 느끼해질 수 있어 일부러 순대를 넣고 얼마 지나지 않은, 조리 막바지에 추가했다.
완성한 백순대볶음을 넓적한 그릇에 옮기고 쑥갓을 조금 올렸다. 의자에 앉자마자 한 젓가락 했다. 요리를 하면서 허기가 더 심해진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대만족이다. 비록 가게에서 먹을 때처럼 팬에 눌어붙은 당면을 긁어먹진 못했지만 그 아쉬움을 능가할 정도로 쫄면이 참 맛있었다. 가게에선 쫄면이 부족해서 보물찾기 하듯이 채소 사이를 뒤적여 가며 찾고 모아서 먹어야 했는데 쫄면을 많이 넣으니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살짝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향과 쫄깃한 식감이 조화로웠고 그 풍미에 빠지니 손을 쉴 수 없었다. '숨도 안 쉬고 너무 먹는 게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땐, 양배추를 양념장에 푹 찍어 먹었다. 아삭아삭하게 씹으면서 잠시 숨 고르기도 하고 매콤한 맛으로 입안을 재정비하는 셈이다. 그리고 다시 쫄면의 세계로 입장했다. 남편은 맥주 한잔 곁들이며 낮술을 즐긴 반면, 나는 할 일이 남아서 탄산수를 곁들였는데 그 여유가 부러운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