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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Jun 16. 2020

26 계절의 맛이 알알이 꽉 찬 옥수수 수프

제철 옥수수를 든든하고 알차게 즐기는 법

집에서 옥수수를 보내주셨다, 그런데 사랑이 과하셨나 보다

제철이라 단맛이 한껏 오를 대로 오른 옥수수였다. 하지만 나는 옥수수를 찾아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옥수수를 받은 날 하나 먹고, 다음날 또 하나를 먹으니 ‘올해 먹을 옥수수는 다 먹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일찌감치 옥수수와의 작별을 고하기에는 남은 옥수수가 무척이나 많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주일 내로 이걸 다 먹을 것 같진 않다. 부모님께서 알이 제일 좋고 촘촘하게 난, 가장 좋은 것들로만 골라서 주신 걸 알기에 이 상태로 방치하면 안 된다. 우선, 주말을 디데이로 잡았다. 옥수수를 전부 삶은 후 냉동 보관하기로.





수프로 해 먹으니 한 끼로 충분한 걸?

삶아서 냉동 보관한 옥수수는 종종 별미의 주재료로써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남편의 안주 맥주에 제격인 콘치즈로, 밀가루와 적당한 비율로 섞어서 노릇하게 부쳐 한 입 크기의 전으로 즐겼다. 그때마다 ‘옥수수가 있어서 다행이다’라며 안도했다. 그렇게 나름의 방식대로 옥수수를 많이 먹었는 줄 알았는데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먹은 양만큼의 옥수수가 냉동실 한편에 있었던 것. 아무리 온도가 낮은 냉동실이라지만 너무 오래 있으면 변질되기 마련이다. 빠른 시일 안에 옥수수를 먹을 궁리를 했다. 마침 비바람 불고 쌀쌀한데 뜨끈한 수프를 만들어 볼까? 냉장실엔 마트에서 행사 때 구입한 훈제 돼지 목살도 있고 곁들이기 좋은 미주라 토스트도 있다. 냉장고 상비군인 모둠 채소, 체다 치즈, 버터, 우유도 충분했다. 냉동 옥수수는 전자레인지에서 해동시킨 후, 칼을 쭉쭉 긁어 알만 분리했다. 그런 다음 믹서에 옥수수, 우유를 넣고 70~80%만 갈았다. 냄비에 버터를 조금 녹이고 거기에 훈제 돼지 목살을 볶다가 모둠 채소, 옥수수와 우유 간 것을 넣고 저어가며 끓였다. 그리고 원하는 농도보다 조금 묽을 때, 체다 치즈를 넣어 풍미를 살리고 농도와 간을 맞췄다. 



옥수수가 입안에서 톡톡 터지니 엄청 고소하네!

옥수수를 일부만 갈았더니 수프를 먹을 때마다 옥수수알이 씹혀서 식감은 재미있어지고 고소한 맛은 풍부해졌다. 덕분에 손이 자꾸만 가는 중독성 강한 맛이 완성됐다. 게다가 오랜만에 불 앞에 서서 쉴 새 없이 수프를 저어가며 (의도치 않게) 정성을 다한 덕분인지 그 맛에 깊이가 느껴지는 듯하다. 미주라 토스트를 수프에 푹 찍어 먹다 보니 옛날 생각도 났다. 엄마가 수프를 해주면 후추를 톡톡 뿌리고 휘휘 저어 섞은 후, 수프를 떠먹었다. 그땐 수프를 워낙 좋아했고 수프 맛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밥을 비롯한 음식들을 전부 삼키고 나서야 수프를 입에 넣었다. 그 당시엔 수프에 밥을 말아먹는 걸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옥수수 수프는 이번에 처음인 것 같다. 지금껏 쇠고기 아니면 양송이 수프 위주로 먹었는데 말이다. 세월이 지나니 입맛도 조금씩 바뀌는가 보다. 이렇듯 음식은 맛뿐만 아니라 지금은 잠시 잊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정신없었던 오늘 하루, 어렸을 때부터 먹는 데에는 유독 개성이 강했던 지난 어린 시절을 곱씹으며 잠시나마 쉴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옥수수철이 왔으니 조만간 또 한 그릇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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