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아침, 지친 저녁. 언제 먹어도 든든한 요리
외근하다 보면 종종 저녁 8시 반이 넘어서 집에 도착할 때가 있다. 그리고 열에 아홉은 늘 ‘저녁 식사를 할지, 말지’ 갈등한다. 저녁을 먹자니 뭔가 부담스럽다. 건너뛰자니 잠들기 전까지 허기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정 즈음에 식탐이 폭발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릴 것만 같다. 게다가 잠들기 전에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부대끼고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땐 넘어오기까지 한다. 그래, 차라리 지금 먹는 게 낫겠다. 그런데 밥은 내키지 않는다. 과일을 먹자니 특유의 새콤한 맛이 식욕을 자극해 폭식을 부를 것 같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간편하게 먹을 만한 그런 건 없을까?
언젠가부터 집 한구석을 지켜온 고구마에 눈길이 갔다. 어라? 고구마 에그 슬럿을 해볼까? 고구마 에그 슬럿을 떠올린 건 작업했던 요리 콘텐츠의 영향이 있었다. 운 좋게 주재료인 고구마와 달걀이 있었고, 그걸 보자 직접 촬영을 진행했던 고구마 에그 슬럿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요리는 가스불 없이 전자레인지만으로도 만들 수 있다. 일하느라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조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선, 그릇에 고구마를 담고 물을 조금 뿌려서 전자레인지에서 4~5분간 익혔다. 전자레인지가 작동되는 동안 냉장고에서 달걀과 슬라이스 치즈, 우유를 꺼냈다. 삶은 고구마는 껍질을 깐 후, 그릇에 으깼다. 동시에 우유를 적당량 부어 고구마와 섞었다. 조금 질척한 상태다. 여기에 달걀을 톡 까서 넣었다. 이때, 포크로 노른자를 찔러야 터지지 않는다. 슬라이스 치즈를 쭉쭉 찢어 달걀에 테두리 치듯이 얹고 소금과 후추를 조금 뿌렸다. 그리고 랩을 씌어 2분, 30초, 30초로 나눠 데웠다.
고구마 에그 슬럿은 밤 9시, 늦은 저녁 식사로 더없이 훌륭한 메뉴였다. 달걀은 단백질 특유의 든든함과 반숙 노른자의 고소함이 빈 속을 달래기에 좋았고, 달달한 고구마는 당이 떨어진 몸 상태에 활력을 넣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짭조름한 치즈는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잘 채우고 달기만 한 고구마에 짠맛을 가미해 단짠단짠의 중독성까지 선사한다. 게다가 요리의 주재료인 고구마와 달걀 자체가 자극적이지 않아서 ‘건강한 한 끼’를 먹었다는 기분도 들게 해 준다. 오늘처럼 늦게 집에 온 날, 종종 컵라면이나 빵으로 허기를 달랬는데 그때마다 ‘괜히 먹었다’는 생각이 든 것과는 정반대다. 게다가 전자레인지에 재료를 넣고 돌리기만 해도 되는 데다 설거지도 적게 나와서 마무리까지 홀가분하다. 다음번에 또 늦은 저녁 식사를 하게 된다면 그때도 고구마 에그 슬럿을 해 먹어야겠다. 그리고 냉장고 상황에 따라 브로콜리나 각종 과일을 추가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