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 무조림
좋아해서, 만들기도 간편해서 어묵탕을 자주 먹는다. 하지만 어묵과 무 위주로 먹어서 늘 국물이 남았다. 맛이 없어서는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멸치, 대파, 마늘 등으로 국물을 우려낸 데다 끓으면서 어묵 속의 간이 국물로 배어 들어서 맛은 당연히 좋다. 요리 초보이자 귀차니스트 입장에서는 꽤 정성 들여 만든 국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더기 없이 국물만 먹으려니 좀 심심했다. 그렇게 방치해두다가 상해서 버린 적도 있었다. 그게 아니면 일요일 늦은 아침,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때 라면이나 우동 사리를 넣어 먹었지만 면 말고 씹히는 게 없으니 아쉬웠다. 이번에는 조금 색다른 활용법을 찾아야겠다 싶어 고민했다. 정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어묵탕에 넣었던 ‘무’에서 힌트를 얻었다. 국물에 무를 더 넣어 조려 보기로 한 것. 국을 덜어먹을 때마다 입에 들어갔던 숟가락이 아닌 새 국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위생상 큰 문제도 없어 보였다. 어묵탕은 먹을 때마다 끓여 국물 맛이 더 진해져서 괜찮겠다 싶었다.
| 제철 10~12월
| 고르기 잔뿌리가 많지 않으며 뿌리 쪽이 통통하고 잎 쪽이 파란 것
| 보관하기 흙이 묻어 있는 채로 신문지에 싸서 햇볕이 들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
귀찮아지기 전에 당장 무를 손질했다. 필러로 껍질을 깐 후, 3등분하고 2cm 두께로 잘랐다. 그런 후 국물에 무와 멸치를 비롯한 재료를 좀 더 추가해서 끓였다. 조림은 원래 국물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이미 국물이 만들어져 있으니 수월했다. 그것도 이미 맛이 보장된 국물이니 중간중간에 간을 보면서 ‘맛이 없지는 않을까’하며 조마조마해하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버릴 수도 있는 국물을 활용한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너무 쉽게 만드는 것 같아 요리를 한다고 하기에 살짝 민망하기도 했다. 매콤 짭조름한 냄새가 주방에 퍼지고 무가 조려지는 동안 조리대를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완성됐다. 그 맛이 짐작되지만 조금 전까지 갓 만든 따끈따끈한 무를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를 덜어 젓가락으로 한 입 크기로 쓱 잘라먹었다. ‘역시!’. 입맛 돋우는 매콤한 맛이 입맛을 확 끌어당기는 걸 보니 청양 고춧가루를 넣길 잘했다 싶었다. 당장 따끈한 밥 한 그릇을 먹고 싶었다. ‘내일은 20분 일찍 일어나서 밥에 무조림 얹어서 먹고 일 나가야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1 무는 2cm 두께로 자른 후, 열십자로 자른다.
2 어묵탕 국물에 무, 멸치 4~5마리, 대파, 고추, 고춧가루, 간장을 넣고 끓인다.
*물은 국물 간에 따라 추가한다.
3 국물이 끓어오르면 불을 줄인다.
4 국물이 줄어들고 무에 국물이 배어들면 파, 마늘을 넣고 끓인 후 불을 끈다.
*기억나는 대로 작성한 레시피로 정확도는 낮지만 취향대로 응용 가능.
이틀 뒤부터 일주일 가량 폭풍 일정이 몰려있다. 주중에 장보고 반찬 만들 시간이 없다. 주말에 만들어 냉장고에 쟁여두고 먹을 반찬이 필요했는데 무조림은 제격이었다. 일반적인 조림보다는 덜 짜게 했지만 어쨌든 조림이기에 쉽게 상하지도 않고, 한 끼에 한 조각씩 먹으니 소모량도 적다. 다 먹은 후에는 남은 국물을 양념장 삼아 달걀 프라이, 참치, 채소 조금을 넣고 슥슥 비벼 비빔밥으로도 먹을 수 있다. 어묵탕으로 즐기고, 무조림으로도 즐기고, 비빔밥으로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민망하게도 무조림을 먹을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스스로를 칭찬했다.) 비록 정도를 많이 벗어났지만 일에 치여 지내는 나의 형편에는 시간과 노동 대비 훌륭한 요리다. 더불어 발상의 전환으로 요리를 너머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