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배기배추 김 국
크고 작은, 짧고 긴 마감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밥을 제대로 챙겨 먹을 겨를이 없었다. 특히나 같이 먹는 사람이 없는 점심은 끼니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부실했다. 저녁땐 그나마 상황이 조금 나았지만 그래 봤자 반조리식이나 집 앞 분식점 요리였다. 몸이 점점 조미료의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지면서 티 나게 아프거나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 건 아니지만 기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았다. 반찬이 화려하지 않아도 집에서 직접 만든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남편도 나처럼 집밥이 그리웠지만 야근하고 집에 늦게 와서 반찬을 만들 수 없는 상황. 어쩔 수 없이 일 마치고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 두 발을 이끌고 식재료를 하나라도 사야 했다. 단, 여유가 없으니 손질이 간단하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힘든 결심을 하고 퇴근길에 동네 마트에 갔다. 눈에 불을 켜고 재료를 물색했다. 오이, 가지, 버섯… 조리는 쉬운데 3~4일이면 다 먹는다. ‘이런저런 조건을 맞추다 보니 마땅한 게 없다’며 실망할 때 즈음, 눈에 알배기배추가 들어왔다. 오호! 흐르는 물에 씻기만 해도 되고 손질이랄 것도 없이 칼로 숭덩숭덩 썰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국으로 끓이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오늘은 바로 너, 알배기배추다.
| 제철 11~12월
| 고르기 밑동이 하얗고 반점이 없으며 들어봤을 때 묵직한 것.
| 보관하기 신문지에 싸서 서늘한 곳에 보관.
알배기배추로 국을 끓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국이 특별한 건 평소에 쓰지 않던 김을 넣었기 때문이다. 알배기배추만으로는 풍미가 2% 부족했을 뻔했다. 사실 김을 쓰려고 계획한 건 아니었다. 국을 끓이다가 우연히 남편이 인스턴트 김탕밥을 먹던 모습이 떠올라 부랴부랴 냉동실에서 남는 김 두 장을 부숴 넣은 것. 김을 넣고 다시 맛을 보니 전보다 훨씬 향긋해졌다. 하지만 그런데도 좀 허전했다. 국물이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오래 푹 끓이진 않았지만 깊고 진한 맛을 내고 싶었다. 그렇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가 예전에 김치찌개에 들기름을 넣어 만든 국물 맛이 생각났다. 맞다, 들기름이다! 딱 한 숟가락인데도 고소한 풍미가 한껏 올라갔다. 내가 원하던 그런 맛이다. 덕분에 뜨끈한 국물에 밥으로 든든한 끼니를 해결했다. 알배기배추 특유의 시원하고 개운한 국 한 그릇은 조미료의 자극적인 맛과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다는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 주었다. 역시 집에서 직접 만든 국과 반찬이 내 몸과 정신을 편안하게 해 준다.
1 냄비에 멸치 5마리, 말린 홍합 다진 것, 물을 끓인다.
2 알배기배추를 2 등분하고 한 입 크기로 썰고, 볼에 달걀을 풀어 둔다.
3 국물이 끓어오르면 멸치를 건져내고, 마늘, 알배기배추를 넣는다.
4 달걀을 둘러 넣고 김을 부숴 넣는다. 소금, 액젓, 간장으로 간하고, 들기름을 한 숟가락 넣는다.
*기억나는 대로 작성한 레시피로 정확도는 낮지만 취향대로 응용 가능.
제대로 된 밥에 대한 갈망이 극대화된 상태, 한 손으로 낭떠러지에 매달려있는 궁지에 내몰린 상태에서 ‘밥다운 밥’을 위해 급하게 장을 보고 재빨리 만드느라 요리에 대해 충분히 고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운 점도 많다. 김은 조리하기 전에 미리 구웠다면 향이 더 올라가고 눅눅한 맛이 덜했을 것 같다. 두부를 넣으면 단백질이 추가돼 영양 균형도 잘 맞고 맑은 국과 궁합도 좋아 담백했을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홍합과 멸치로 국물을 냈으니 여기에 북어를 추가하면 해장국처럼 시원한 맛을 내는 것도 가능하겠다. 북엇국을 좋아해서 다음에 또 먹게 된다면 이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바로 전에 청국장을 안 먹었다면 된장을 풀어 심심한 된장국으로 즐겨도 괜찮을 것 같다. 대신 달걀 대신 감자나 당근을 넣어서 달큼한 맛과 씹는 식감을 내야겠다. 다음번에 된장으로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시도해봐야겠다. 단돈 1,500원으로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만들어 맛도 훌륭한 가성비 최고, 알배기배추 김국. 허기는 물론,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를 만든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은 요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