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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Mar 06. 2018

14 Camp Nou

되새김질해보는 스페인에서의 추억 두 번째

평창 올림픽의 공백을 캄프 누로 채우다 

올림픽 기간 내내 선수들의 메달 획득 소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거나 경기장 밖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2주일 가까이 해오던 걸 올림픽이 끝나면서 못하게 되니 뭔가 허전하다. 스포츠 마니아도 아닌데도 올림픽의 공백이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이야! 올림픽에서 스페인이 눈에 띈 활약을 보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더 커졌다. <윤 식당 2>를 보며 대리 만족하면서 잠잠해진 스페인 앓이가 재발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 당장 떠날 수 없는 없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추억을 또 한 번 소환하는 수밖에. 평창 올림픽에서의 아쉬움도 달랠 겸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 누 투어를 곱씹어 보기로 했다. 


| 캄프 누. ⓒ김현경


바르셀로나 시민의 자부심, FC바르셀로나

캄프 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FC바르셀로나에 대한 설명부터 하는 게 좋겠다. 축구팬이라면 알겠지만 FC바르셀로나는 호나우지뉴, 메시 등 세계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한 명문 구단. 특정 기업 소속이 아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협동조합이다. 160만 명의 바르셀로나 시민을 구단주로 두고 있다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 그래서인지 바르셀로나 시민의 구단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하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바탕에는 바르셀로나 시민의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FC바르셀로나는 1899년 카탈루냐 사람들의 자치권 회복에 대한 염원에서 탄생했다. 1137년, 카탈루냐가 아라곤 왕령에 의해 강제로 스페인에 통합되면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독립을 주장했다. 이후에 부분적으로 자치권을 획득했지만 1925년, 그마저 군부 정권의 탄압으로 진압당하고 캄프 누가 폐쇄된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고 이듬해에는 FC바르셀로나 초대 회장이 프랑코 정권 군인들에 의해 살해된다. (이 사건은 훗날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앙숙이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온갖 시련을 극복한 끝에 1970년대 중반,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행정 구역 상 독립된 지방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후, FC바르셀로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막강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축구에 대한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사랑은 상상 그 이상. FC바르셀로나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거의 모든 펍과 레스토랑 앞에는 경기 시간과 상대팀 정보를 적은 팻말이 내걸린다. 경기가 시작되면 중계방송을 보며 열렬히 응원하는 건 당연한 일. 승리에 대한 열망은 엘 클라시코에서 절정에 달한다. 엘 클라시코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최대 라이벌인 레알마드리드와의 경기로 이날은 많은 시민들이 FC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다니며 카탈루냐 정부의 깃발을 들고 행진을 하기도 한다. 



캄프 누에 왔노라, 보았노라

시민을 12번째 선수로 둔 팀의 홈구장이자 전 세계 축덕의 성지라 그런지 역시 특별하다. 캄프 누는 1957년에 건설돼 9만 명 이상 수용한다. 놀랍게도 이토록 많은 좌석이 엘 클라시코 경기에는 모두 매진된다고 한다. 규모 말고도 특별한 게 많다. 바로, 캄프 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투어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축구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로 투어는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경기가 없는 날에만 가능하다. 

투어는 크게 박물관, 선수용 시설, 경기장 순으로 이루어진다. 박물관에서는 FC바르셀로나의 운영 시스템, 팀의 활약상과 각종 트로피들을 볼 수 있다. 글과 사진 같은 1차원적인 방식을 벗어나 터치스크린과 동작 인식 센서를 적용한 오디오, 피부를 자극하는 동영상 등 다각적인 방식으로 FC바르셀로나의 115년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디스플레이 방식 덕분에 축알못인 나도 참 재미있게 박물관을 둘러봤다. 다양한 전시품 중에서도 관람객들의 호응이 뜨거웠던 건 메시가 받은 발롱도르. 발롱도르는 한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상으로 축구 선수에게는 영광스러운 상이 아닐 수 없다. FC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메시는 2009~2012년, 2015년 모두 5차례 발롱도르를 차지했다. 관람객들은 발롱도르와 인증 사진을 찍는 건 물론, 그 옆에서 재생되는 경기 영상을 보며 또 한 번 그 순간의 감동에 흠뻑 취한다.  



박물관을 다 둘러보면 선수들의 흔적을 좀 더 가까이 느껴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이러한 관람객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다음 행선지로 선수용 시설이 밀집된 드레싱 룸이 이어진다. 4개의 구역으로 나뉘며 선수들이 유니폼을 갈아입는 락커 룸, 샤워실, 심신 안정을 위한 테라피 시설을 갖춘 공간, 코칭스태프를 위한 미팅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선수들을 위한 기도실에 다다르자 기분이 묘했다. 경기 전 초조한 마음과 부담감을 다잡으려 애쓰는 모습이 떠올라서, 모든 것을 걸고 승리를 간절히 염원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그랬나 보다. 드레싱 룸 옆에는 프레스 룸과 믹스드 존이 있다. 믹스드 존은 선수들과 기자들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공간으로 후원사의 로고가 빼곡하게 채워진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제격이다.  

이제, 경기장 내부로 향할 차례다. 동선은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로 연결된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경기장답게 관중석에서 필드를 한눈에 담는 게 버겁다. 고개를 180도 돌려 가며 봐야 할 정도다. 그 규모에 압도되면서 관중석에 쓰인 ‘MES QUE UN CLUB’이라는 문구에 시선이 간다. FC바르셀로나의 슬로건으로 ‘클럽 그 이상’이라는 뜻이다. 카탈루냐 사람들에게 FC바르셀로나는 단순히 축구팀이 아니라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의지의 표출인 것처럼 캄프 누 역시 축구 경기장이라는 기능적인 공간을 넘어 카탈루냐 사람들에겐 상징적인 공간인 셈이다. 그라운드로 내려가니 관람석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흥분에 사로잡혔다. 축구의 전설이 쓰이는 현장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에 한 번, 선수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 옆에 뛰고 있는 듯한 상상에 또 한 번 전율했다. 그라운드 보호 차원에서 잔디를 밟을 순 없지만 그로 인한 아쉬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없다. 투어 중인 날, 잔디 관리 시설이 그라운드를 누볐는데 관계자는 이 또한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진풍경이라고 귀띔한다. 


| 클럽 그 이상의 가치가 실현되는 캄프 누. ⓒ김현경


클럽 그 이상의 가치가 실현되는 캄프 누

150유로만 내면 전 세계 누구나 2년간 FC바르셀로나의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창간 초기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것. 팀 수익 중에는 캄프 누 투어에서 비롯된 것도 일부 포함된다. 이익은 시설 개선에 쓰인다. 여기서 말하는 시설 개선에는 선수 육성도 포함된다. 메시를 비롯한 FC바르셀로나 소속 24명의 선수 중,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시작한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한 유소년 육성 시스템 하에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호흡을 맞췄고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선수들의 골 점유율이 70%에 육박하는 요인을 이러한 시스템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또한, FC바르셀로나는 국제연합아동기구인 유니세프와 10년이 넘는 스폰서십 계약을 맺고 팀의 수익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팀의 슬로건대로 축구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FC바르셀로나. 그 가치가 실현되는 캄프 누가 축덕들의 두터운 지지와 열렬한 사랑을 받고 ‘성지’로 불리는 상황이 충분히 이해된다. 


| 캄프 누 굿즈가 가득한 스토어. ⓒ김현경


캄프 누 투어가 끝나서 아쉽다고? 

투어를 마치고 경기장을 나서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념품 매장이 두 팔 벌려 환영해줄 것이다. 홈구장에 위치한 매장답게 특별하다. 2층 규모의 매장에 들어서면 FC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은 마네킹들이 대열을 갖춰 관람객을 맞이해준다. 그 늠름한 모습에 선수들 못지않은 위용이 느껴진다. 매장에서는 FC바르셀로나와 관련된 거의 모든 굿즈를 판매한다. 유니폼과 축구화는 물론, 문구 용품과 마그넷에 심지어 FC바르셀로나 로고가 찍힌 스낵까지 없는 게 없다. 쇼핑이라면 치를 떠는 남자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고민하게 되는 지구 상의 유일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메시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은 15만 원가량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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