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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May 08. 2018

7 여행지에서 만난 뜻밖의 소울 푸드

복잡 미묘하지만 강력한 한방이 있는 똠얌꿍

감흥이 없었던 첫 만남  

똠얌꿍을 처음 먹은 건 2012년 봄, 회사 선배와 외근 나와서 함께 한 점심 식사에서였다. 동네에 마땅한 곳이 없어서 태국 요릿집에 들어갔다. 선배는 메뉴를 훑어보며 “똠얌꿍 먹어 봤어?”라고 물었다. “네? 똠얌꿍이요? 아직이요.”라고 대답하자 “그럼, 이것도 주문하자.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는 것도 일하는 분야의 견문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거야.”라며 양지 쌀국수, 파인애플 볶음밥에 똠얌꿍을 추가했다. 작은 불이 일렁이는 초 위에 냄비가 세팅된 모습은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어색했다. 화덕 피자집에서 봤던 모습을 태국 요릿집에서도 마주하다니. 선배가 한 숟가락 먹은 후, ‘그래, 이 맛이야!’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나도 맛을 봤다. ‘흠, 무슨 맛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이 어떠냐는 선배의 물음에 “허허허, 특이해요. 더 먹어봐야 맛을 제대로 알 것 같아요.”라며 얼버무렸다. 



고수

| 제철 6~7월

| 고르기 잎과 줄기가 연한 것.

| 보관하기 물기를 적신 키친타월에 감싸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보관.



그땐 몰랐던 똠얌꿍의 매력, 반전의 재회

2017년 봄, 남편과 태국 여행을 갔다. 늘 그랬듯이 ‘이번 여행에서 꼭 해야 할 리스트’를 정리했다. 그중에는 ‘삼시 세끼 쌀국수 먹기’도 있었다. 태국에 도착해 계획대로 쌀국수를 먹었다. 첫째 날엔 밤이 늦어 가볍게 볶음 쌀국수와 쏨땀을 먹었다. 다음 날 점심, 짜뚜짝 시장 노점에 들어서자 갑작스레 똠얌꿍이 먹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주문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던 5년 전에 만난 똠얌꿍과의 재회. 그동안 전 세계 매체와 유명 셰프들이 똠얌꿍을 재조명하고 호평하면서 똠얌꿍에 대한 정보가 얄팍하게 쌓이긴 했다. 똠얌꿍의 ‘똠’은 끓이다, ‘얌’은 무치다, ‘꿍’은 새우를 뜻하며 새우와 향신료, 소스, 각종 채소를 넣고 끓인 수프라는 정도. 하지만 마음의 준비는커녕 방콕 시내 똠얌꿍 맛집을 찾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똠얌꿍을 다시 먹게 될 줄이야. 그것도 똠얌꿍의 고향, 태국에서! 다시 먹은 똠얌꿍의 맛은 매력 그 차제였다. 맵고, 시고, 짠맛과 은은한 단맛, 태국 요리 특유의 강렬한 향신료가 절묘하면서도 조화롭다. 중독성도 어마어마하다. 더위에 취약한 내가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자작하게 끓는 똠얌꿍을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맛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재료

| 해산물, 양파, 토마토, 고수, 레몬(또는 라임, 식초), 버섯, 청양고추, 숙주, 생강가루, 고춧가루, 버터, 월계수잎, 쌀국수면(또는 버미셀리)


1 똠얌 페이스트를 물에 걸쭉하게 탄다. 고수는 잘게 다지고 레몬은 슬라이스한다.  

*고수는 최대한 잘게 다져야 향이 풍부해진다.

2 달군 팬에 버터 소량을 넣고 각종 해산물, 양파를 볶는다.

3 재료가 익으면 페이스트를 섞은 물, 물, 고수(1/2 분량), 레몬, 나머지 재료를 넣고 끓인다.

*물의 양은 간을 보면서 조절한다.

4 국물이 끓어오르면 숙주, 면을 넣는다.

5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추고 재료가 익으면 불을 끈다. 고수, 레몬을 곁들인다.

*기억나는 대로 작성한 레시피로 정확도는 낮지만 취향대로 응용 가능.


똠얌꿍, 소울 푸드로 내 마음속에 저장

태국에서 맛본 똠얌꿍과 똠얌 피자(위). 익선동 동남아, 콘타이의 똠얌 누들(아래). ⓒ김현경

짜뚜짝 시장에서 맛본 똠얌꿍을 계기로 여행 리스트 속 삼시 세끼 쌀국수 먹기는 ‘똠얌꿍’ 먹기로 바뀌었다. 똠얌꿍뿐만 아니라 똠얌꿍을 활용한 퓨전 음식도 맛봤다. 통로의 오드리카페&비스트로에서는 똠얌 페이스트를 넣은 똠얌 피자를 먹기도 했다. 이 매력적인 맛을 태국에서만 즐기기엔 아쉬워 여행 마지막 날, 마트에서 똠얌꿍 페이스트를 한 보따리 샀다. 한국에 돌아와서 태국 여행이 그리울 때마다 똠얌꿍을 해 먹었다. 초반에는 모든 재료를 완벽하게 갖춰 요리했지만 장 볼 시간이 마땅치 않을 땐 집에 있는 재료로 최대한 비슷하게 맛을 내고 있다. (사실, 재료가 부실한 상태에서 요리할 때가 훨씬 많다.) 새우가 없을 땐, 목이버섯을 푸짐하게 넣어 꼬들꼬들한 식감을 더하고, 국물을 자작하게 조리해 파스타처럼 즐기기도 했다. 기분이 단숨에 전환되는 신맛과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는 칼칼한 맛 그리고 이국적인 풍미와 자꾸만 손이 가는 감칠맛… 다채로운 맛의 향연과 더불어 태국에서의 즐거웠던 시간을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일까?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똠얌꿍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예전에는 매운 떡볶이가 당겼다면 이제는 똠얌꿍의 시대가 열린 것. 이럴 땐, 매운맛과 신맛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더욱 강조하여 청양고추와 고추씨, 레몬을 평소보다 더 넣는다. 그뿐만 아니다. 비공식적이지만 나만의 똠얌꿍 미식회도 즐기고 있다. 똠얌꿍을 판매하는 태국 요릿집에 가서 ‘이 집 똠얌꿍은 맛이 어떤지’를 나름대로 분석하며 마음에 드는 부분을 기억해뒀다 써먹는다. 비슷한 이유로 일부러 제조사가 다른 똠얌 페이스트를 사 먹는다. 예고 없이 찾아와 소울 푸드 자리를 꿰차고, 요리와 맛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선사해준 똠얌꿍.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똠얌꿍에 대한 애정이 무럭무럭 커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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