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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Sep 08. 2018

8 여행의 맛을 재현한 한 그릇

맛있을 수밖에 없는 토마토 라면

호텔 조식 말고 로컬 조식!

누군가 하루 중에 식욕이 가장 왕성할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눈 뜨자마자’라고 대답한다. 아침에 눈 뜨면 참기 힘들 정도로 허기가 심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여행 가면 호텔 조식은 꼭 신청한다. 눈 뜨자마자 갓 만든 다양한 음식들을 뷔페로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기 때문. 하지만, 최근 홍콩 여행에서는 호텔 조식을 먹지 않기로 했다. 홍콩 현지인들에게 아침 식사는 집이 아닌 식당에서 하는 게 보편적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문 여는 식당이 많단다. 게다가 공복 상태고 하루를 시작하는 첫 끼니여서 든든한 메뉴도 꽤 많다고. 여행 전 숙소 근처에 아침 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아봤다. 숙소는 셩완에 위치한다. 걸어서 10~15분 거리에 소호, 올드타운 센트럴이 있다. 숙소 근처에는 홍콩식 죽인 콘지를 파는 곳, 토스트를 파는 곳, 토마토 라면을 파는 곳이 있다. 죽은 평소에 선호하지 않고 토스트는 간식으로 먹으면 괜찮겠다. 그렇게 해서 토마토 라면이 홍콩에서의 첫 로컬 조식 메뉴로 결정됐다.



여기가 토마토 라면이 유명한 그 식당 맞습니까?

식당은 올드타운 센트럴에 위치하고 숙소에서 15분 정도 거리이다. 그래서 길을 나서기 전, 허기를 달랠 응급조치 차원으로 플레인 요구르트 하나를 먹었다. 아, 식당 이름은 싱흥유엔! 토마토 라면이 유명한 곳으로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에게 인기가 좋단다. 지도 앱을 켜고 가는데 식당 근처를 맴도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 미리 가게 사진을 숙지한 게 무색할 정도로 헤맸다. 어라, 식당이 여기야?! 건물이 아닌 공터에 천막을 쳐서 지붕을 만들었고 손님들은 그 천막 아래에 설치한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다. 아침 8시 반쯤이라서 줄을 서서 먹기도 한다는 리뷰와 달리 자리는 널널했다. 여행객보다는 현지인이 더 많았다. 직원에게 자리를 안내받고 메뉴판을 훑어봤다. 토마토 라면 1개와 아이스티를 골랐다. 직원을 불러 주문하는데 자꾸 나한테 되묻는다. 광둥어를 몰라서 갸웃하자 합석한 아저씨가 “토핑, 토핑!”하고 말해줬다. 라면에 토핑까지 포함된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런천미트, 달걀, 마카로니 중 런천미트를 추가했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비둘기 한 마리가 테이블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다. 도시의 비둘기는 위생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에 그 모습이 꽤나 당혹스러웠다. ‘맛이 없기만 해 봐라’ 토마토 라면이 나왔다. 으깨진 토마토가 면 위를 덮고 있어서 첫인상은 솔직히 별로였다. 면을 뒤적이니 바닥에 깔린 런천미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국물을 맛봤다. ‘오호! 이건 무슨 맛이지? 새콤한데 감칠맛이 엄청나네!’ 그 맛에 빠져 연거푸 국물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면을 먹어봤다. 내가 좋아하는 꼬들꼬들하고 가느다란 면이다. 숟가락에 면을 올려놓고 국물을 살짝 적신 후, 그 위에 작게 자른 런천미트를 올려 한 입에 넣었다. 좋아하는 맛과 식감이 만나니 진실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재료들인데 어쩜 이렇게 근사할까?



재료

| 토마토, 케첩, 사리면, 런천미트(또는 스팸), 달걀, 소금 


1 믹서에 토마토를 넣고 간다. 이때, 토마토의 크기는 취향에 따라 결정한다.

2 냄비에 토마토, 런천미트, 물을 넣고 끓인다. 

3 ‘2’가 끓는 동안 달걀 프라이를 만든다.

4 ‘2’가 끓어오르면 사리면을 넣고 간을 보며 케첩을 넣는다. 

5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추고 면이 익으면 불을 끈다.

6 그릇에 옮겨 담고 위에 달걀을 올린다.

*주재료가 2번 글과 중복되므로 재료 소개는 생략.

**기억나는 대로 작성한 레시피로 정확도는 낮지만 취향대로 응용 가능.



홍콩 앓이를 달래주는 맛

홍콩의 매력에 흠뻑 취해버렸는지 한국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 홍콩에서의 추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며 진정시켰지만 그곳에서 만난 요리는 사진으로 재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홍콩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근사했고 집에서 할 수 있는 토마토 라면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때마침 엄마가 준 토마토가 냉장고 한편에 있었고 명절 선물로 받은 스팸도 아직 남아 있다. 매운탕용으로 사둔 사리면도 있었다. 게다가 면발이 가늘어서 토마토 라면의 맛을 살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처음 해보는 메뉴라서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순서를 생각해봤다. 홍콩에선 토핑으로 런천미트만 먹었지만 이번에는 달걀 프라이도 추가하기로 했다. 우선 토마토를 큼직하게 자른 후, 믹서기로 적당히 간다. 그런 후, 끓인 물에 토마토, 런천미트를 넣고 다시 끓어오를 때까지 달걀 프라이를 만든다. 다시 끓어오르면 면을 넣으면 되겠다. 그런데 토마토만으로는 맛이 2% 부족할 것 같다. 맛을 보장해줄 확실한 한방이 필요했다. 케첩이 떠올랐다. 케첩 뚜껑을 열어 조리대에 대기시키다가 적당량 넣었다. 라면이 완성됐고 맛을 봤다. 신기하다. 그때 그 맛과 정말 비슷하다. 케첩이 없었으면 이 맛이 나지 않았으리라. 라면을 먹기 시작하자 그날 식당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라면을 한 입 넣고 씹는 동안 옆자리에 앉은 모녀가 다정하게 서로를 챙겨 주고, 앞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음식을 먹으며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왼손 검지로 화면을 올리면서 무언가 보고 있는, 홍콩 사람들의 일상적이면서 평화로운 모습뿐이다. 여행지에 다녀온 후, 그때 먹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은 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번 토마토 라면은 왠지 모르게 특별하다. 홍콩이 그리울 땐 이 라면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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