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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Sep 24. 2018

9 오래 두고 먹는 감칠맛 대장

국물용 멸치 볶음

볶음이 된 국물용 멸치

결혼한 이후로 절묘하게도 작업이 몰리는 시기와 반찬이 떨어지는 시기가 겹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용도에 맞게 사온 재료로 요리한 일이 손에 꼽힌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3개월 전부터 시작한 작업을 마무리하는 단계라서 신경 쓸 부분이 산적해있었다. 일주일 내내 집에 틀어박혀 일만 하니 집밥을 먹는 횟수도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냉장고 속 반찬은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냉장고를 지키는 건 열무김치와 배추김치, 달걀뿐이었다. 당장 반찬을 해야 했다.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훑어봤다. 우선 반찬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재료가 거의 없었다. ‘인터넷으로 장을 봐야 하나? 그러면 일이 또 늘어날 텐데’라며 고민하던 찰나, 국물용 멸치가 눈에 들어왔다. 양도 적당했다. 게다가 멸치 그 자체로도 짭조름해서 나물처럼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지 않을 것 같다. 다음 주에 내가 여행 가있는 3박 5일간 남편 혼자 먹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적은 양으로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감칠맛도 좋아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평소보다 꼼꼼하게 손질하기

국물용 멸치는 이름대로 국물을 내는 데 쓰기 때문에 볶음용 멸치보다 크다. 그 말인즉, 내장이 커서 떫은맛도 더 강하다는 뜻. 볶음용 멸치를 쓸 때 하지 않던 내장 제거 작업에 돌입했다. 내장을 제거하니 멸치가 살짝 너덜댄다. 순간 ‘이왕 이렇게 된 거 반으로 가르는 게 나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과정이 추가된다.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더 소요된다. 내장을 제거하는 것까지만 하기로 했다. 너덜대는 건 볶는 과정에서 완전히 분리되거나 유지되거나 알아서 되겠지. 나머지 조리 과정은 평소에 멸치 볶음을 만들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기름 두르지 않은 팬에 멸치를 덖어서 수분을 제거한 후, 덜어두었다. 그다음 팬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 슬라이스를 먼저 익혔다. 기름에 마늘의 풍미를 입히기 위해서다. 비린 맛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을 위해 시행착오 끝에 정착한 방식이다. 그러고 나서 멸치와 고추를 볶다가 양념을 넣어 버무리듯이 볶았다. 완성되자마자 바로 맛을 봤다. 매콤한 청양고추가 입맛을 돋운다. 




재료

| 국물용 멸치, 식용유, 마늘, 고추, 올리고당(또는 설탕), 통깨


1 국물용 멸치는 내장을 제거한다.

2 마늘은 슬라이스하고 고추는 한입 크기로 썬다.

3 식용유를 두르지 않은 팬에 국물용 멸치를 덖은 후, 덜어둔다.

4 팬에 식용유를 두른 후, 마늘을 튀기듯이 굽는다.

5 마늘이 익으면 국물용 멸치, 고추를 넣고 볶다가 올리고당(또는 설탕)을 넣어 골고루 섞듯이 볶는다.

6 재료를 다 볶은 후, 통깨를 뿌려 버무린다.



원래 용도에 얽매이지 않는 연습

공부할 때나, 일할 때나 응용은 필수다. 그리고 중요하다.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에 대처하려면 원래 정해진 틀을 변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그리고 예상한 대로 갖춰져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고, 하필이면 그런 때 중대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응용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차근차근 해결하겠지만 나의 경우 그러한 자세가 부족하다. 응용법이 떠오를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그래서 이번 같은 기회가 소중하다. 예상 밖의 상황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응용하는 자세를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본래 용도가 아닌 재료로 응용하면 원하는 맛을 낼 확률이 조금은 떨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완성된 요리가 입맛에 더 맞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 멸치를 좋아해서 평소에도 종종 야식으로 우유와 곁들여 먹곤 한다. 국물을 만들고 건져낸 멸치도 버리지 않고 모아서 먹고, 간혹 덜 건져진 멸치가 남편 그릇에서 발견되면 내가 먹는다. 그래서 이번 멸치 볶음은 멸치가 큼직해서 마음에 든다. 하지만 집에 아몬드나 땅콩 등 견과류가 없어서 넣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남아있다면 김밥 속 재료로 활용해볼 계획이다. 회사 다닐 때 저녁 식사로 즐겨 먹던 멸추 김밥(멸치 볶음과 고추를 넣어 만든 김밥)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여행지가 중국이라서 한국에 오면 매콤하게 입맛 돋우는 간단한 요리가 당길 것도 같다. 오늘 요리도 대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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