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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Nov 10. 2018

10 속 편하게 즐기는 든든한 한 끼

미역 죽

소화력 '0' 상태에서 만든 죽

미역으로 죽을 만들게 된 건 물에 빠진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비롯됐다. 9살부터 이어져 온 편두통이 최근 일상생활을 힘들게 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통증 양상도 전과 달라졌고 그 부위도 확장되었다. 게다가 각 신체 부위는 유기적이기 때문에 통증이 머리에 그치지 않고 신경과 혈관이 연결된 다른 부위까지 퍼졌다. 전에는 그 정도가 미미해서 참고 넘겼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 부위가 하필이면 위장이어서 소화 불량 증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먹을 수 있는 거라곤 액체류나 이유식 같은 유동식뿐이었다. 하지만 약을 먹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이러한 음식으로 버티는 건 무리였다. 생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든든한 무언가를 먹어야 했다. 고심 끝에 떠오른 건 죽이었다. ‘단번에’가 아니라 ‘고심 끝’인 이유는 죽을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 죽을 먹는 건 지구 상에 남은 유일한 음식이 죽인 상황이라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죽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지금 또한 예상치 못한 죽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벼우면서도 깊은 맛 내기

죽을 싫어하는 이유는 밋밋한 맛과 식감. 지금은 부피가 큰 음식은 소화시키지 못하므로 식감은 포기! 하지만 맛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요령껏 맛이라도 살려야겠다. 물론, 위장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래서 기본 중의 기본인 쌀죽을 요리조리 변형시켜 보기로 했다. 우선 조리 시간을 단축하고 소화를 돕기 위해 미리 지어 놓은 쌀밥을 믹서로 갈았다. 죽을 끓일 때 넣는 물은 멸치로 국물을 내서 쓰기로 했다. 죽으로 끓였을 때 밥알 특유의 단맛(내가 선호하지 않는 맛이기도 하다)을 줄이고 감칠맛을 올리려는 의도다. 그리고 여기에 미역을 조금 추가하기로 했다. 비록 너무 아프지만 타고난 식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대신 미역의 양은 1/2~2/3줌으로 적게 잡고, 잘게 잘라서 넣기로 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건, 기존의 미역 죽처럼 미역을 기름에 볶지 않는 것! 음식 속 소량의 지방 성분에도 예민해진 상태라 기름에 볶아서 고소한 맛을 살리는 조리법은 내게 맞지 않는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냄비 앞에서 40분가량 지키고 있으니 죽이 완성됐다.



재료

| 미역, 쌀밥, 멸치, 간장(또는 소금)


1 미역을 잘게 자른 후, 따뜻한 물에 불린다.

2 냄비에 멸치를 넣고 국물을 낸다.

3 믹서에 쌀밥을 넣고 간다. 

4 냄비에 미역, 쌀밥, 쌀밥의 1.5배가량의 물을 넣고 저어가며 끓인다.

5 쌀알이 부드럽게 뭉개지면 간장, 소금으로 간한다.

*미역은 기름에 볶지 않는다.

**기억나는 대로 작성한 레시피로 정확도는 낮지만 취향대로 응용 가능.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기 

완성된 죽을 봤다. 맛있게 먹기 위해 만든 음식이 아닌 살기 위해 만든 음식이라서 그런지 가슴 한편이 뭉클하다. 하지만 식탐은 여전해서 소화력이 개선된다면 추가하면 좋을 재료들이 떠올랐다. 냉동실 속 마른 새우 소량을 갈아 넣어서 풍미를 살려도 좋을 것 같고, 황태를 작게 잘라 넣으면 기력을 회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미역 죽을 먹고 소화력이 개선돼 이렇게 응용된 죽을 먹지 않으면 더욱 좋겠지만. 비록 집에 있는 재료 중 내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재료라 선택의 여지없이 미역을 넣긴 했지만 미역이 위장 벽을 보호해주는 효능이 있다고 하니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음식이 곧 약이라는 약식동원이라는 말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실리콘 밥 팩에 소분하여 냉동실에 얼린 미역 죽을 다 먹지 않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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