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도시 계획 이야기
3년 전,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으며 ‘지금 여기가 아까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지나온 곳을 계속 뱅글뱅글 도는 듯했다. 그럴 만도 한 게 한국처럼 건물들의 높이가 제각기 다르거나 간판도 화려하지 않았다. 더구나 유럽의 ‘거리’ 체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기댈 곳이 건물 생김새나 간판뿐이어서 더 당혹스러웠다. 그러던 중, 누군가에게 ‘바르셀로나는 계획 도시라며?’라는 말을 들은 게 생각이 났다. 답답함을 해결하는 데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다.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150여 년 전, 건축가 일데폰스 세르다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한다. 바둑판 모양을 갖추게 된 건 19세기 후반, 옛 성곽이 무너지면서부터다. 도시가 확장의 시기를 맞이했을 때, 세르다는 도시가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건물의 앞면을 일직선으로 맞추고 신시가지를 정사각형의 구획으로 나누었다. 이 구획이 에이샴플라(Eixample)로 600여 개의 정사각형 만사나(Manzana)로 이루어진다. 블록을 의미하는 만사나는 한 변이 113m이며, 건물들이 가운데를 비워둔 채 ‘ㅁ’자 구조로 배열되어 있다. 이 빈 공간에 나무를 심어 공용 정원으로 가꾼 것이 특징이다. 빡빡한 도시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을 끌어들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도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건물을 철거하거나 재건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만약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건물 안을 보수하는 선에서 해결한다. 무분별한 도시 개발을 막고 예부터 전해오는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노력이다. 하지만 ‘에이샴플라도 정사각형이고, 만사나도 정사각형이면 풍경이 심심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러한 생각을 150여 년 전의 세르다도 했는지 에이샴플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인 디아고날(Diognal)을 만들었다. 그것도 대각선이다. 정방형 도시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약간의 변형 덕분에 사람들은 길을 조금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돌이켜보니 당시에 머물렀던 숙소의 테라스에서 본 곳이 바로 만사나의 공용 정원인 것 같다. 잔디에 키가 큰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벤치도 있었다. 호텔이 있어서 투숙객을 위해 특별히 조성한 건 줄 알았는데 바르셀로나 도시 계획의 산물인 셈이자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일상적인 공간이었다. ‘여기가 저기고, 저기가 여기’ 같았던 거리도 다시 보니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정해진 틀 안에서 소재와 폰트, 형태를 감각적으로 디자인한 간판은 가게의 콘셉트를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간판처럼 번쩍번쩍하고 툭 튀어나와있지 않은데도 눈길이 간다. 충분히 멋스럽고 재치 넘친다. 건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리 도시 계획에 대해 알았다면 더 자세히 관찰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일부 만사나가 새로운 건물을 위해 닫혀 있다는데 다음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반겨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