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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Jan 09. 2019

14 잊을 수 없는 생소함, 락사

입맛 돋우는 싱가포르의 국물 요리

처음 만나는 이국적인 맛

락사를 처음 먹어본 건 3년 전, 어느 호텔 레스토랑이었다. 여름이었고 때마침 아시아 각 나라의 보양식을 선보이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중국, 일본 등을 대표하는 보양식이 마련되어 있었고 싱가포르의 대표 보양식으로는 락사를 제공했다. 뜨거운 핫팟에서 잔잔하게 끓고 있는 주황빛 국물이 마치 똠얌꿍을 연상케 했다. 그래서 락사라는 이름은 생소한데도 친근했다. 부담 없이 세 국자 정도 펐다. 궁금증 반, 설렘 반으로 맛을 봤다. 흠...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먹어 봐야겠다. 가족들이 무슨 맛이냐고 물었지만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익숙한 향신료와 낯선 향신료가 뒤섞인 오묘한 향을 분석하고 조합하여 한마디로 ‘이러한 맛이다’라고 정리하는 데 온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었다. 혀에서 느껴지는 맛도 마찬가지였다. 살짝 매콤하고 고소하고 새콤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 맛이 똠얌꿍처럼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건 아니다. 순하면서도 개성 있는 맛. 새우를 비롯한 해산물과도 잘 어울린다. 그 맛을 파악하느라 가족들에게 설명해주지도 못하고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다시 가져왔다. "얼마나 맛있길래 한 그릇 더 가져왔어?"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입맛 돋우는 맛이야. 먹어봐." 엄마, 아빠는 "향신료가 강하긴 한데 나쁘지 않네.", 살짝 초딩 입맛인 언니와 남편은 "앗, 별론데?". 예상했던 반응이다. 



추억은 있지만 맛은 모르겠다

그 이후로 락사를 맛볼 기회는 없었다. 태국 요리의 유행으로 똠얌꿍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지만 락사는 인터넷에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았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탓에 락사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작년 하노이 여행 중 락사를 다시 만나게 됐다. 음식점은 아니고, 마트였다. 집에 돌아가서도 현지 맛이 나는 쌀국수를 만들기 위해 쌀국수 페이스트를 사려고 해당 섹션에 갔는데 옆에 락사 페이스트도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반갑고도 신기했다. 페이스트를 한 무더기 구입했다. 반가움도 잠시 한국에 돌아오니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락사는커녕 제대로 된 집밥도 못 먹었다. 그렇게 다시 락사와 멀어졌다. 그 맛도 머릿속에서 점점 지워져 갔다. 일이 마무리되고 한숨 돌릴 상황이 되니 락사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맛은 기억나지 않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만 남았다. 또 락사와 멀어지려는 찰나, 우연히 신촌에 락사를 판매하는 레스토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달려가 락사를 먹어 봤다. 국물도 찬찬히 음미하고 재료들도 꼼꼼하게 살폈다. 평소 같았으면 후루룩 허겁지겁 먹었을 텐데. 나름 락사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재료를 샀다.



재료

| 락사 페이스트, 코코넛 파우더, 쌀국수면, 해산물(새우, 홍합, 바지락 등), 숙주, 레몬, 고수, 태국식 고춧가루(또는 고춧가루), 버터 소량


1 락사 페이스트를 물에 녹인다.

2 달군 냄비에 버터 소량을 두르고 해산물을 볶는다.

3 락사 페이스트 물과 물을 냄비에 붓고 코코넛 파우더를 넣고 끓인다.

4 국물이 끓어오르면 쌀국수면을 넣고 다시 끓인다.

5 면이 익으면 불을 끄고 남은 열로 숙주를 익힌다.

  *취향대로 레몬, 고수, 태국식 고춧가루를 추가해도 좋다.



그 맛, 재현해보리라

페이스트를 물에 미리 진하게 녹이고, 냄비에 버터를 조금 둘러 해산물을 볶았다. 재료가 적당히 익었을 때, 페이스트와 물을 붓고 코코넛 파우더를 추가했다. 이국적인 향을 위해 월계수잎도 추가했다. 첫 시도라 국물이 끓고 맛이 우러나오기 한참 전부터 맛을 보고 코코넛 파우더와 페이스트를 추가하는 등 별의별 유난을 떨었다. '이제 좀 됐다' 싶어서 맛을 보니 조금 허전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나의 미각으로는 알아낼 수 없었다. 불을 끄지 못한 채 고민했다. 하지만 더 끓이면 안 될 것 같아 면을 넣어 익혔다. 그동안 레몬을 슬라이스했다. 드디어 요리가 끝났다. 부족하다는 걸 안 상태에서 맛을 봐서인지 그런대로 맛이 났다. 향신료의 이국적인 풍미와 고소한 맛. 락사를 처음 먹었을 때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음식에 추억이 깃든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건가. 객관적으로 맛만 고려하면 부족하지만 주관을 듬뿍 담아 평가하자면 10점 만점에 10점이다. 게다가 차가운 바람이 몸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요즘 같은 날씨에 만나서 더 좋다. 게다가 락사 덕분에 만들 수 있는 이국적인 요리가 하나 더 늘어서 뿌듯하다. 실력이 늘어서 "우리 집에 락사 먹으러 오세요!"라며 가족들을 초대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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