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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Oct 09. 2017

1 명절 음식으로 느끼한 속에 제격!

달큼 시원한 애호박 국

계획에 없던, 갑자기 생긴 애호박

남편이 시댁에 잠시 들렀다 애호박 하나를 얻어 왔다. 그런데 모양이 좀 독특했다. 내가 알고 있던 길쭉한 형태가 아닌 공 모양이었고 컸다. 애호박을 즐겨 먹는 편도 아니고 전이 익숙한 내가 감당하기엔 살짝 벅찬 상대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며 전은 질리도록 부쳤기 때문에 전 말고 다른 요리를 하고 싶었다. 마감해야 할 원고가 수두룩한 때, 얻어온 제철 재료라 ‘잘 됐다’ 싶으면서도 ‘전 말고 다른 방법으로 맛있게 요리할 수 없을까?’하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막막했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이틀이나 ‘애호박을 간단하게 요리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묘안’에 대해 고민했다. 장을 볼 시간조차 없기에 ‘재료를 추가로 구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도 붙였다.



애호박

| 제철 3~10월(초여름에 단물이 절정에 오른다)

| 고르기 꼭지가 촉촉하고 신선하며 몸통에 흠집이 없고 윤기가 흐르는 것. 단물이 가득 찬 것은 묵직하다.

| 보관하기 랩으로 단단히 감싸 냉장 보관. 반달 모양으로 썰어 겹치지 않게 담아 냉동 보관.





달큼 삼형제로 만드는 시원한 국

고민 끝에 생각해낸 건 국이었다. 추석 전후로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 더부룩해진 속에 먹어도 부대끼지 않는,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나게! 애호박만으로는 그러한 맛을 내기에는 부족할 것 같았다. 부족한 요리 경력을 보완하고자 요리 매거진과 단행본 일을 하며 알게 된 지식들을 긁어 모았다.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점검했다. 한입 크기로 썰어 얼려둔 양파, 청국장에 넣고 남은 무가 있었다. 이 세 가지 재료를 보자마자 <더 라이트> 가을호에서 썼던 기사가 떠올랐다. ‘무를 넣으면 국물이 시원하고 달큼해진다’는 것과 ‘양파는 열에 익히면 달달한 맛이 한층 올라간다는 것’. 애호박과 무, 양파를 넣어 달큼하고 시원한 맛을 극대화한 국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국물에 감칠맛을 내기 위해 말린 홍합을 물에 불린 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했다. 여기에 청국장에 넣고 남은 팽이버섯을 넣어 쫄깃한 식감을 살리고 마늘과 대파로 맛의 균형을 잡았다.



1 말린 홍합을 물에 담가 불린다.

2 애호박, 양파, 무를 한입 크기로 썬다. 이때, 무는 애호박보다 얇게 썬다. 대파는 송송 썰고 팽이버섯은 밑동을 자른다.

3 냄비에 홍합을 넣어 푹 끓인 후, 애호박, 양파, 무를 넣어 끓인다.

4 애호박이 말캉해지면 나머지 재료를 넣고 새우젓으로 간한다.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춘다.

*기억나는 대로 작성한 레시피로 정확도는 낮지만 취향대로 응용 가능.



입맛대로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국

처음에 의도한 맛도 좋지만 칼칼한 맛을 선호하는 나는 고춧가루나 청양고추를 넣어 먹기도 했다. 바쁠 땐, 건더기가 많아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불렀다. 하지만 건더기가 금세 동이 났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연휴에는 집에서 식사를 해서 그 속도가 빠르기도 했다. 남은 재료를 추가하여 두 번 더 끓여서 먹었다. 건더기와 국물 둘 다 애매하게 남았을 땐, 얼려둔 수제비 반죽을 넣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 없이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얇게 썬 감자를 추가하고 수제비 대신 칼국수를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애호박 국 덕분에 시작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해본 적 없는 일을 하기 전에 늘 망설이고 고민을 너무 길게 하다가 적당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후회한 적이 많았다. 대략적으로 큰 그림이 그려진다 싶으면 앞뒤 재지 말고 시도해도 좋겠다.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이라면 신중해야 하지만 그게 요리라면 짧지는 않지만 그간의 요리 경력들이 있기에 사람이 못 먹을 정도는 아닐 거다. 그렇게 일상 속 작은 부분부터 작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더 큰 일 앞에서 담대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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