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한 토마토 카레
추석 연휴 동안 오랜만에 언니 얼굴도 보고 같이 밥도 먹을 겸 집에 놀러 갔다. 물론, 남편 없이 혼자! 오후에 도착해 ‘오늘 점심 뭐 먹었냐’는 나의 질문에 언니는 ‘카프레제 먹었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카프레제가 맛있긴 한데 사놓은 토마토를 다 못 먹을 것 같아. 몇 개 싸줄 테니까 너도 먹어’라며 봉투에 토마토를 넣어 주었다. 집에 갈 때마다 언니가 좋은 걸 많이 챙겨줘서 오늘은 안 그랬으면 했는데 오늘도 두 손 묵직하게 먹을 걸 챙겨줬다. 방울토마토가 아닌 일반 토마토는 오랜만이다. 대충 먹으면 나중에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조금은 다르게 먹기 위해 ‘토마토와 어울리는 재료들이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냉장고 속을 들여다봤다.
| 제철 7~9월
| 고르기 크고 단단하며 붉은빛이 선명한 것. 꼭지가 시들지 않은 것.
| 보관하기 햇볕이 들지 않은 곳에 상온 보관.
눈에 들어온 건 전날 먹다 남은 3분 카레. 토마토를 으깨 넣어 색다른 카레로 재탄생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수퍼레시피>에서 으깬 방울토마토와 케첩을 섞은 소스로 만든 요리를 다룬 적이 있어 먹어 봤는데 맛이 꽤 좋았다. 감칠맛도 났고 채소 우린 국물과는 또 다른 개운한 맛도 일품이었다. 부족한 카레는 강황 가루를 물에 개어 보충하고, 늘어난 물과 토마토로 인해 밍밍해져 버린 맛은 육수 큐브를 추가해 균형을 살리려는 게 나의 계획이다. 토마토를 살짝 데쳐낸 후 식히는 동안 냉동실 속 양파를 꺼내 냄비에 달달 볶았다. 그러고 나서 토마토를 으깨서 넣고 강황 가루와 물을 적절하게 섞어 저어 가며 끓였다. 요리가 예상한 대로 착착 진행돼서 자신 있게 맛을 봤는데 ‘어랏?’ 내가 예상한던 카레 맛이 아니었다. 너무 묽었고 맛도 2% 부족했다. ‘더 조려야 하나?’하며 고민하던 찰나! <수요미식회>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유명 카레 요릿집에서 카레에 깊은 맛을 내고 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치즈를 넣는다’는 요리 연구가의 말이다. 냉장고에서 급히 슬라이스 치즈 2장을 꺼내 냄비로 직행했고 파마산 치즈 가루를 한 스푼 가량 추가했다. 다시 저어서 맛을 보니 내가 기대한 바로 그 맛이 났다.
1 토마토에 열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낸 후 끓는 물에 데쳐 식힌다. 껍질을 벗기고 으깨 놓는다.
2 냄비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가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볶는다.
3 남은 카레와 으깬 토마토, 강황가루, 육수 큐브, 물 1/2컵을 넣고 끓인다.
4 슬라이스 치즈와 파마산 치즈 가루를 넣고 저어 가며 끓여 완성한다.
*기억나는 대로 작성한 레시피로 정확도는 낮지만 취향대로 응용 가능.
토마토는 별다른 조리 없이 바로 먹어도 맛이 좋다. 열을 가하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개운한 감칠맛이 나와 더욱 맛이 좋아진다. 카레와 섞이면 카레 특유의 강렬한 향신료 맛을 완화시켜준다. 카레를 먹고 나면 갈증이 심해지는 내 취향에는 제격인 셈. 마지막에 넣은 치즈에서는 신기하게도 치즈 고유의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주연을 빛내는 숨은 조연처럼 3분 카레를 하루 종일 정성 들여 끓인 카레처럼 깊이 있고 묵직한 맛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주었다. 토마토 못지않게 치즈의 매력을 재발견한 요리였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숨은 조연처럼 도움이 되는 존재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긍정의 대답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나를 위해 기꺼이 조연이 돼주기를 바랐던’ 적은 있었다. 어느 한쪽을 ‘옳다, 그르다’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주목을 덜 받는 자리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때도 분명히 있다. 그땐, 자리를 탓하기보다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궁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요리에서 주인공인 치즈가 흔적조차 보이지 않은 채로 음식을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