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는 기술이다

관계의 체급을 바꾸는 거절의 미학

by 알파시커

사실 내가 잘 못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거절'이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사람을 봐가면서 거절하는 편이다.

나에게 진심으로 호의적인 사람,

겉으로만 호의적인 사람을 구별하면서...



회사에는 공식 조직도 말고,

또 하나의 ‘숨은 조직도’가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체감하는,

‘관계의 위계’다.


그 위계는 직급, 연차보다 더 강력하다.

그리고 그 체급은,

거절할 줄 아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 사이에서 갈린다.






“넵! ”의 반복

결국 ‘존재의 무력감’으로 돌아오게 된다.


나르시시스트에 매번 가스라이팅 당하는 장면은 어떤가?

또 회사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런 사람들은 어떤가?


이 중 하나가 우리의 유형이 아닐까?


일을 넘기는 사람,

일을 잘 부탁하는 사람,

일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늘 바쁘다.

남 일까지 끌어안는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누군가 다가와 말한다.


“김대리님, 이 자료 가지고 계세요?"

"박과장님, 저번에 그거 하셨었지요? 혹시 이것도 아시나요?"

"이차장님, 이것 좀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도움을 요청하는 말에 기꺼이 도와주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 부탁의 대상이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

실상 부탁하는 당사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잘 못하니까, 서투니까, 매번 능숙하게 도와줬으니까...

이번에도 또 부탁하는 일들.


그때마다 어정쩡한 미소 지으며 말한다.


“아, 오늘은 좀... 네. 이번만요…”


그렇게 ‘이번만’이 세 번째를 지나고 나면,

그는 ‘언제든 시키면 해주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 순간부터 그에겐 ‘자기 시간’이 없다.

눈치게임, 감정 노동, 끝없는 야근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주변 동료들까지 당연한 듯 공유한다.


그거 김대리한테 부탁하면 해줄 거야...




이 모든 건 “No”라고 말하지 못한 대가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렇다.

사실 거절할 수 없는 이유가 그 당사자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절대 악의 없는 착한 사람일수록, 더 크게 당한다.


sticker sticker

이렇게 쳐다보고 있는데 당당하게 부탁해 올 사람이 많을까?






다수의 사람들은 막상 거절을 두려워한다.

거절은 관계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은 거절을 관계의 단절로 오해한다.

거절하면 상대방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하는?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거절은 “이 선은 지켜주세요!”라는 일종의 경계선이다.

그리고 그 선이 명확할수록, 오히려 존중받을 수 있다.


경계가 없는 관계는 자주 무너진다.

무너진 후에야 말한다. “그땐 왜 말을 못 했을까…”





거절을 잘하는 사람의 기술


거절에도 기술이 있다.

효과적인 거절은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관계의 주도권을 가져온다.


“지금은 어렵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 이후에 도와드릴 수 있어요.”

“이건 제 업무가 아니라서요. 관련 팀에 직접 말씀해 보세요.”

“지금 급한 업무 중이라서요. 본부장님 업무라. 죄송합니다.”


핵심은 지금은 안된다는 것,

그리고 기다릴 거면 기다리고 아니면 다른 곳을 찾아보라는 것!

물론 가장 좋은 프레임은 ‘명확한 이유 + 대안 제시’이다.

그럼에도 억지로 밀어붙이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는 애초에 ‘착취’의 마인드를 깔고 있던 것.





사례 하나.

– ‘거절을 배운 후, 인생이 달라졌다’


30대 후반의 한 지인, 스타트업 리더의 이야기다.

초기 멤버로 들어가 매일 야근을 도맡았다.

‘헌신’

잘 되고자 하는 마음,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

그러나 그의 자존감은 땅에 떨어졌다.


매번 그냥 네네 하면서 해주던 일이 어느 날부터인가

과중하게 느껴지던 그때,

어느 날, 심하게 무리한 업무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처음으로 단호히 말했다.


“죄송한데 이건 제 일이 아닙니다. 더는 이렇게 못 하겠습니다.”


그의 한마디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

아무렇지 않게 부탁하던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는 그를 ‘예스맨’으로 보다가 더 이상은 건들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야 제대로 된 ‘리더’로 보기 시작한 것일까?

사람이 때로는 거절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해 주던 게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얼굴도 밝아진 것 같다.

그냥 내 느낌일지 모르지만.


지인이 내게 말해줬다.

“진짜 개호구로 보더라.

방방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한마디 해줬더니 얼굴색 싹 바뀌던데요.

네네 하면서 내 시간 갈아 넣으면서 해줬는데. 이게 맞나? 싶더라고.

팀장이라 우리 팀원들과 옆팀 사람들 생각해서 네네 해줬는데.

형 말 듣길 잘했어요.

진작에 거절하고 들이댔어야 했나 봐.

부탁을 들어주면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호구로 생각하더라고.

할 말 하고 아니다 싶을 때 제대로 거절할 줄 알아야 내 시간이 생겨.

눈도 피하고 ㅎㅎ”





마무리.

– 관계의 체급을 바꾸는 한마디


관계에는 구조가 필요하다.

No는 그 구조를 설계하는 첫 단추다.

그것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자기 삶을 설계하려는 주인의 선언이다.




“당신이 모든 것을 받아주면,
당신의 ‘시간’은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 알파시커 —




당신의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Here With Me

알파시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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