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올랐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지만 종종 나도 모르게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곤 한다.
바다 안에 깊이 잠들어 있던 유리병이 떠오르듯.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아무래도 내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아직도 그 기억을 끔찍한 악몽으로 남겨두고 있는 듯했다.
담배를 한 까치 꺼내 불을 붙이자,
방안이 연기로 둘러 싸이고 내 몸을 휘감듯 그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잠들 듯 눈을 스르르 감는다.
다시 생각해봤자 나에게 남는 건 끝없는 후회뿐일걸 테지만,
그 또한 익숙해져 버린 지라 두렵거나 무섭기보단 그저 무덤덤한 감정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날 밤, 나는 생각했었다.
끝없는 절망 끝에는 다시 희망이 피어난다고
하지만 다시 돌이켜 보면 그 절망은 희망으로 피어나고 다시 희망은 절망에 침식 되 다시 절망에 빠지고 또 한번 희망이 피어난다는 것을.
수년 동안 끝없이 반복해 왔다.
그땐 그저 그날 밤의 일을 다시 한 번만 되돌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정말 신이란 게 존재한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 라도 다시 한 번만 되돌리게 해 달라고.
잠들기 전 늘 기도했지만 매일매일이 악몽 와 함께 깨어나는 것뿐이었고 나에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깨어나서는 늘 절망했지만 오래된 습관처럼 늘 잠들기 전 항상 기도하면서 잠들곤 했다. 수년간.
신도 용서해 줄 수 없는 죄악이었을까?
그저 실수일 뿐이라고 날 자위하곤 했다.
당시에 나에겐 나의 대부분이라 할 정도로 머리 속에 들어있는 큰 생각 중 하나였지만 무섭게도 시간이 지나자 차차 무감각해졌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난 아주 천천히 죄책감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눈을 뜨자 못다 핀 담뱃재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일들은 지금의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메말라버린 화석처럼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
이가 빠져 더 이상 쓰지 않는 컵으로 만든 재떨이에 담배를 지졌다.
다만 남은 건 그저 약간의 후회뿐. 그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