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그날?
2023년 3월 20일
퇴사 1일 전 하루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할 일들을 모두 정리했기에 평소보다 느긋하다는 점만 달랐다. 반가운 소식을 전달받은 건 유난히 따듯한 오늘의 공기를 가르며 늦은 점심 식사를 하러 가던 때였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진심인가? 나도 예전엔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일종의 야망이 있었다. 이력 검증이 필요 없는 다른 블로그를 운영했지만 브런치는 뭔가 특별해 보였다. 글 발행을 위해 작가 신청을 해야 한다는 점도 재미있었고, 나와 다르지 않은 직장인들, 취업 준비생들, 학생들. 거창한 '작가' 타이틀이 없는 일반인들이 이 플랫폼을 통해 에세이를 출간하곤 한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나 정도면 가능하겠지?'
헛된 꿈을 와장창 깨뜨린 것은 몇 년 전 처음 받은 '아쉽지만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란 매정한 메일 한 통. 오기가 생겨 거절당한 당일에 신청을, 또 거절 당일에 신청을, 또또 그 당일에 신청을 거듭하다 모든 걸 하얗게 불태우고 작가 신청을 포기했었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 나름의 조촐한 퇴사 축하 파티로 친구이자 상사인 J와 평소에 자주 가던 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 집에 돌아와 취기에 신청한 브런치 작가 신청이 통과된 것이다.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 옆에,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던 친구도 바로 금요일에 함께 술을 마셨던 J로, 이쯤 되면 이 친구가 나의 행운의 마스코트가 아닌가 싶다. (거절은 거절할게 J.)
어떻게 업무시간이 지나고, 함께 버스를 탔던 직장동료를 배웅하고 버스 안에 혼자 남은 순간, 사람의 일이란 건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때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몇 년이 지난 후엔 예전에 간절히 원했던 일이 술김에 한 일종의 장난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한 달 전, 나는 회사를 그만두는 날이 오는 것을 몹시 기다렸다. 하지만 퇴사를 하루 앞둔 오늘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마음에 내려앉았다. 즐겁게 보낸 오늘이 내 것이 아닌 듯, 직장 동료가 내린 버스 안에서 오늘도 잔잔한 우울감이 내 안에 내려앉았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회사에 대한 불만이나 팀원에 대한 불만이 아닌 나 혼자 정체된 듯한 느낌 때문이었는데,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난 뭘 하고 싶은 거지?' 끝없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퇴사 결정을 내리기 전까진 도전을 위해 뛰쳐나와야 한다고 생각된 '회사란 소속'이 퇴사 하루 전인 오늘, 짧은 순간은 나와 이 땅을 잇는 단 하나의 목숨줄처럼 느껴졌다.
나와 사회를 잇는 단 하나의 끈. 마치 이것을 잃으면 사회와의 건강한 연결을 영영 잃어버릴 것 같은 끈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버스에서 알 수 없는 부유감이 들었다. 마치 끈 하나 달고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일이면 나를 우주선과 연결하던 단단한 끈이 떨어져 완전히 우주에 홀로 남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그렇게 느낄 것이다. 언제는 나를 묶는 족쇄로, 언제는 나를 잇는 생명줄로.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불안도 퇴사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겠지. 수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이게 비정상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위로한다. 어쩔 거냐.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는데. 내가 불안하던 기쁘던 나는 예비 백수다. 쉽게 생각하자. 쉽게 생각하면 인생이 쉬워지고, 어렵게 생각하면 인생이 어려워진다곤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