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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람 Apr 11. 2023

몇천 원 싸게 사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

이제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2023년 4월 10일

4월 10일 일기인데 11일 새벽에 쓰고 있다. 근 일주일째 일기를 새벽에 쓰고 있는데 점점 취침시간이 늦어지는 것 같아 위기감이 느껴진다. 


오늘은 파이썬(Python) 강의를 들었다. 솔직히 SQL보다 3배 정도 어려운 것 같은데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어차피 이해를 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강의를 들으니 더 빠른 속도로 진도를 빼고 있다. 오늘 배운 부분은 Dart-API를 활용해서 Dart에 기재된 정보들을 출력하는 방법이었는데 소소한 규모로 주식을 하는 편이라 그런지 무섭도록 집중이 됐다. 강사 선생님은 카카오로 시범을 보였지만 나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잡주ㅋㅋㅋ 의 종목 코드를 넣어서 따라 했더니 더 재밌었다. 물론 재미와 정신의 피로도는 별개라 금세 지쳤지만 SQL강의를 80% 이상 들어서 자비부담금이 환급된다는 카톡을 보자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다. 파이썬 인강도 완강해서 자비부담금도 받고 강의도 평생 소장했으면 좋겠다. 



몇천 원 싸게 사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


출처 : pixabay 작가 : TBIT 


자비부담금 환급 이야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생각난 게 있다. 여러분 중에서 뭐 하나를 할 때마다 겨우 몇천 원을 아끼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 검색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내가 그런 편이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에 꽂히면 그것밖에 보지 못한다. 필요한 물건을 몇천 원 싸게 사기 위해서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이란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데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는다. 만족스럽게 샀던 물건도 남들이 더 싸게 샀다고 하고, 내가 산 뒤에 할인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손해 본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다. 그것이 필요한 물건이었고, 할인은 받지 못했지만 그 물건을 먼저 구매해서 지금까지 유용하게 쓰고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거나 그걸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는데도 나빠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런 성향이 굉장히 짙은 편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시간은 무엇보다도 귀중한 자원이지만 그것을 깨닫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같은 사람이라면 나이가 더 어릴수록 시간 아까울 줄 모른다. 20대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시간의 귀중함을 몰랐고 10대의 나는 더 심했다. 흥미롭게도,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귀중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이유는 나이가 들 수록 더 시간을 헛되이 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의 우리는 탐구심이 가득하고 천방지축 망아지처럼 뛰놀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시간 아까울 줄 몰랐지만 천성적인 호기심으로 누구보다 시간을 압축해서 사용했다. 어린아이의 하루는 어른보다 길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매일 단조로운 하루기에 밤늦게 잠을 자려 누워보면 하루가 얼마나 짧고 허무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항상 그렇듯 삼천포로 빠져버렸는데,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다. 물건을 몇천 원 싸게 사기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 마치 나의 도플갱어를 보는 듯한 이 사람들은 내 추측으로 손실에 굉장히 민감한 센서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단거리 경주마 같다. 양 옆을 막아두고 바로 앞의 목표를 이루는데 온 신경을 집중한다. 이런 사람들은 가까이서 보면 이해득실에 밝은 것 같지만 사소한 일에 집착해 작은 일(싸게 사는 일)은 이루고 보다 큰 일(시간을 아끼는 일)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기에 의식적으로 넓게 보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남한테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이 성향에도 괜찮은 이점이 있는데 바로 '환급반' 제도를 이용하기 좋다는 것이다. 


나는 강의를 신청하고도 돈 낭비를 하는 일이 잦았다. 강의 신청 할 때 선생님 목록, 가성비, 이전 수강생 후기를 꼼꼼히 살피면 뭐 하나 듣지를 않는데. 전형적인 내 앞의 돌다리만 두드리고 크게 보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꼴이었다. 그런 내가 효과적으로 강의를 수강하고 본래의 목적을 이뤘던 것은 모두 '환급반' 제도의 강의다. 우리 단거리 경주마들은 장거리를 잘 못 뛴다. 내 앞에 계속 흔들릴 당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환급' 제도는 우리 같은 성향 사람들에게 딱 맞는 기가 막힌 당근이다. 



환급받으려고 토플 공부를 하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 보겠다. 나는 예전에 수능 영어 4등급을 받았다.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지만 영어가 두려워서 대학교 1, 2학년 때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고학년이 되어서야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들어 현장 강의를 신청했지만 한 달은 다니는 둥 마는 둥 했고, 한 달의 수강 기간이 끝난 시점에 본 모의토플에서는 62점이라는 처참한 점수를 받았다. 


그랬던 나는 일 년 뒤 6개월 간 인터넷 강의를 듣고 토플 92점을 받는다. 졸업 직전에 나는 에라 모르겠다 마지막 기회다! 란 느낌으로 인터넷 80점 환급반을 신청했다. 환급을 받는 방법은 80점 넘기와 100% 출석하기 의 두 가지였는데 처음엔 강의에서 뭐라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이렇게 된 거 100% 출석 제도를 이용해서 환급을 받겠다는 목적으로 강의를 꾸준히 들었다. 


어느 순간 나의 목적은 토플 고득점을 받아 교환학생을 가는 게 아니라 환급을 받는 게 되어 있었다. 눈앞의 당근에만 매몰된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 토플 고득점을 받게 됐다. 처음부터 토플 90점이 목표였다면? 솔직히 이룰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나는 영어가 너무나도 두려웠고 나에게 토플 80점을 넘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 출석한다(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 출석으로 환급을 받는다 -> 출석이 구멍 났네 환급받기 위해 80점을 넘긴다(이때부터는 거의 원래의 목표를 잊었다고 보면 된다) -> 얼떨결에 고득점의 흐름을 탄 결과 결국엔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쨌거나 목표를 이룬 것이다. 


멀리 보지 못하고 바로 앞의 자잘한 문제에 매몰되는 우리들은 어쩌면 무언가를 이루기에 좋지 못한 성향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의 문제에 놀랄 만큼 몰입하는 집중력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스탯일 수도 있다. 크게 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 집중하는 어떻게 포장해도 별로 좋지 못한 성향이 방향을 다르게 접근하는 것만으로 목표를 이루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렇듯 나의 단점도 잘만 이용하면 활용성이 있다. 고치려고 노력해도 잘 바뀌지 않는 내 단점을 사랑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혐오할 필요는 없다. 바뀌려는 노력은 계속하되 이용할 수 있을 땐 이용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나는 이번에도 나의 이 성향에 기대를 걸어볼 생각이다. 일단 강의 80%를 들어서 환급을 받는 걸 목표로 할 생각인데 80%를 넘기고 나면 분명 내 성격적으로 '이 정도면 100% 수강으로 평생 소장도 도전해 볼 법 한데?'란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백수인 나에게는 시간도 있고 눈앞의 당근도 충분하다(80% 달성 보상, 100% 달성 보상) 이제 어떻게 될지는 수강 기간이 끝날 때 판별이 되겠지. 궁금한 사람들은 다음 주 화요일까지 내 일기를 계속 봐주면 된다. 그럼 이만.





본문에 언급된 토플 관련 이야기가 더 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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