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2일
오늘은 <커피러시>라는 보드게임을 개시했다. 사람들과 <커피러시>를 한판하고 명작으로 알려진 <윙스팬>도 두 판 돌렸다.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하루가 훌쩍 없어지곤 한다. 그냥 <윙스팬>과 <커피러시>가 재미있었다는 게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 어제 일기를 쓰지 않은 이유는... 어떤 기분을 맥주 두 캔의 힘을 빌려 잊어버리려다 금세 취해버려 일기만 거르게 되었다. 역시 음주는 유혹적이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그걸 매번 겪는데도 항상 같은 실수를 하곤 한다.
여러분은 기우(杞憂)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가? 이 단어는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할까 걱정했던 기나라 사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걸 걱정하다니. 바보 같기 짝이 없다. 하늘이 무너지는 천재지변이 일상적인 일도 아니거니와, 하늘이 무너지면 어차피 모두 죽을 텐데 피할 데가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것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은 무용할 뿐이다. 머리로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나 역시 이 이야기 속의 '기나라 사람'처럼 쓸데없는 걱정을 해 왔다. 바로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초등학생일 적 부모님이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으시면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릴 적에는 투니버스만 보는 착한 어린이였는데, 어디서 생겨난 망상인지 부모님이 늦게 들어오시면 어디서 사고라도 나신 것만 같았다. '엄마 아빠가 어디서 사고가 났는데, 그래서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내가 자느라 못 받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어 부모님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자는 척 기다렸다. 가끔은 부모님이 멀쩡히 집에서 자고 계신대도 심장마비 등의 이유로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실까 봐 도둑걸음으로 부모님 방까지 걸어가 몰래 방문을 열고 부모님의 생존을 염탐(?)하곤 했다. 어린 내게 어떤 특정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무 이유가 없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자다가 갑자기 죽을까 봐 밤에 잠을 못 이룬 적도 많았다.
그럴 때면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곤 했던 어린 김알람
이런 비이성적인 공포가 몰려올 때면 이상한 기분이 밀려들었는데, 내 육체는 이곳에 있는데 영혼은 육체를 반쯤 빠져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정신이 머리 위를 반쯤 빠져나와 붕 떠다니는 이 기분은 묘한 울렁거림을 동반했다. 아주 불안정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이후로도 나는 이것과 비슷한 상태를 유발하는 다른 행위들에도 기묘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주는 느낌이라거나 술에 아주 취했을 때, 놀이기구를 탔을 때 같은 것들.
때때로 이런 느낌이 육체에 가해진 물리적인 흔들림 없이 갑작스레 등장하기도 했다. 골목길에 튀어나온 자전거 때문에 차가 급정거하는 모습을 볼 때, 로드킬을 당한 불쌍한 동물을 발견할 때. 빗속에서 끼익 소리를 내며 자동차가 멈출 때. 길고 허공을 울리는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를 들을 때. 대부분은 아무렇지 않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다. 약한 울렁거림과 불쾌감이 느껴진다.
어릴 적엔 잠도 자지 못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이게 오로지 정신적인 것에서 발생한 것임을 아는데도, 이런 느낌을 종종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할 뿐이다. 만약 내가 동물로 다시 태어나면 아주 약하고 겁이 많은 동물일 게 틀림없다. 이런저런 일에 모두 예민하게 반응하니 야생에서 살아남기 참 힘들 것이다. 어쩌면 겁이 많으니 더 잘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민함 때문에 스트레스를 잘 받을 테니 오래 살아남더라도 그게 행복한 삶일지는 알 수 없다.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모호한 것들을 글로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묘사하기 위해서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할지도 어렵고, 애써 적어보아도 만들어낸 문장이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하기까지 하다. 모국어로 글을 쓰고 있는데도 외국어를 사용해 소통하는 것 같은 답답함이다. 하지만 외국어도 느는 것처럼 글 쓰기도 늘 것을 믿는다. 지금의 글쓰기는 두서없는 자기만족일지 몰라도 미래에는 타인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날카로운 도구가 될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