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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람 May 01. 2023

3일 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이유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2023년 4월 30일

일기를 안 쓴 지 4일째다. 일기 쓰기를 건너뛴 첫날은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것도 금세 무뎌졌다. 4일 째인 지금에서 죄책감은커녕 변명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굳이 쓸 필요 없지 않나? 어차피 정보 위주의 글이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만족일 뿐이잖아?'


굉장히 맞는 말인 내면의 소리에 세뇌가 될 때쯤, 다시 나 자신을 위해서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일기를 쓰지 않은 3일 동안 정말로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일기를 썼던 때 다음 날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너무 많았는데 결국 그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씻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니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보여서 일기를 쓰기가 싫었다. 그렇게 일기를 한 번 건너뛴 후 다음 날은 잔잔한 무기력증에 잠식되어 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끼처럼 가만히 있으니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던지.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불안감이 내게 얼마나 익숙했던지.


그렇게 3일을 보내고 오늘은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역꾸역 씻고 카페로 나오니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카페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노트북을 보고 있다. 카페 본연의 목적에 맞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카페는 이래서 좋다.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카페 특유의 비트 있는 음악은 노래를 잘 듣지 않는 내게 약간 노동요처럼 느껴진다. 같은 공간에 있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왜 카페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카페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노트북과 그들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혹은 이야기하는 타인들이 일행과 만들어내는 집중력을 레퍼런스 삼아 아무것이나 할 뿐이다. 내가 뭔가를 하며 만들어내는 집중력이 또 다른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길 바라면서.


거의 처음으로 after effects를 사용해 만든 영상. 릴스용으로 만든 거라 음악은 없다


오늘 카페에서 after effects로 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에펙 기초를 옛날에 잠깐 배워봤지만 피카츄 회전시키기까지 배우고 머리가 아파 그만두었는데, 사람이란 게 관심이 가면 옛날엔 못하겠던 것을 이렇게 자발적으로 배우게 된다. 14초 밖에 안 되는 영상이지만 진짜 오래 걸렸다. 에펙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alram_k_ 인스타에서도 영상을 볼 수 있는데 가서 좋아요를 눌러준다면 아주 기쁠 것 같다.


기술과 거의 담쌓고 지냈던 내가 늦게나마 더듬더듬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난다. 영상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기술 중심이거나 서사 중심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긴 판의 양 끝에 있는 기술과 서사란 영역 사이에 세모꼴의 받침대를 끼워 넣어 어떻게든 균형을 맞추며 자신만의 선호를 찾아야 한다. 100% 기술이라던가 100% 서사 편향된 작품이라는 건 사실 대중적으로 별로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심각할 정도의 서사 편향의 사람이었다. 균형이랄 게 없달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결국 '기술은 내가 못할 것 같다'는 무의식이 나를 한쪽으로 몰았던 게 아닌가 싶다. 지금도 부족해서 의식적으로 노력 중이지만,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더더욱 '협업'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치기 어린 김알람이었기 때문이다. 남과 함께 일하는데 익숙지 않으니 모든 것을 혼자 하려고 하는데,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에게는 100% 확률로 불가능한 일이고.


생각보다 긴 일기를 쓰게 되었다. 만약 내 일기를 읽으며 공감과 흥미를 느껴왔고, 3일의 부재에 실망한 사람들이 있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떻게 하루하루를 알차게만 살 수 있을까. 나는 너무 안 알차게 사는 게 문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멈춰야겠다. 무한 우쭈쭈로 매일 일기 쓰기를 지속하려는 일종의 전략이다. 남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런 나 자신을 나라도 이해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이해하기 싫더라도, 비난과 책망으로 움츠러들게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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