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한 질문에 대답은 할 수 없었다
2023년 8월 25일 금요일
어제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우주 양자 마음>이란 공연을 보고 집에 들어와 집 곳곳의 헤진 모기장을 교체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나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이 들어 일기는 뒷전으로 두고 바로 곯아떨어져버렸다.
오늘 아침 무심코 휴대폰을 확인하고 고민에 빠졌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포지션 제안이 와 있었다. 비단 오늘뿐 아니라 며칠 전에도 몇몇의 제안이 왔는데 몇 개는 거절하고 몇 개는 보류한 상태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오늘 받은 포지션 제안도 마찬가지였다.
왜 나에게 제안을 보낸 것일까? 첫 번째로 든 것은 의문이었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그래서 이 제안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계속 서류 탈락만 하고 있으니 포지션 제안을 승낙해 기분 전환(?)겸 면접이라도 보는 게 어떻겠냐는 마음과 어차피 자신이 없는 직무에 자신이 없는 산업인데 시간 낭비만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 내 안에서 싸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마음의 싸움은 다소 우스운 일이다. 어차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반쯤 죽이며 보내고 있는 시간인데 '시간 낭비'가 아까워서 제안을 고민하고 있다니. 고민을 하느라 흘려보낸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었던 건가? 동시에 다른 마음에게도 성마른 비판의식이 생긴다. 어차피 합격해도 입사하지 않을 것 같은 회사에 지원하겠다는 이유가 그거야? '기분 전환'? 너는 지금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아무 데라도 들어가 일을 하면 그걸로 좋은 거야? 아니면 이번에는 고르고 골라 회사에 입사한 뒤 이전보다 더 오랜 시간 재직하고 싶은 거야? 내 마음속에는 이토록 질문이 넘쳐나지만 내가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
또 오늘 한 일이라면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을 완독 한 것이다. 백온유 작가의 <유원>이라는 성장소설이었다. 주인공 유원은 어릴 적 아파트 방화 사건의 생존자로 그녀는 그 사건으로 사망한 언니와 아파트 밑에서 6살짜리 유원을 받아준 아저씨 덕분에 살아남았다. 유원의 가족은 아직도 죽은 언니의 생일을 챙기고, 그 사건으로 다리에 장애를 입은 아저씨는 틈만 나면 유원의 집에 찾아와 돈을 받아간다. 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17살의 언니, 그래서 불운한 사고에도 어린 동생을 아파트 밑으로 던져 동생의 목숨만은 건진 언니, 영웅인 아저씨, 생면 부지의 6살 소녀를 살리기 위해 11층 높이에서 아이를 받아내고 그 대가로 영구한 장애를 입은 아저씨.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되뇌지만 18살이 된 유원은 어째서 삶이라는 빚에 질식할 것만 같은 걸까.
내가 청소년일 때도 몇몇 청소년 소설을 읽었지만 나는 성인이 된 다음에야 청소년 소설을 더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정신적 성장이 늦되었던 것일까.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위한 글이 아직도 마음을 위로한다는 것은 아직도 내가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