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에겐 다소 가혹한 나라, 이집트

운명

by 온기

임신은 알았지만, 그날은 이집트로 떠나는 날이었다.

취소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이미 비행기 표는 끊겼고,

일정은 시작돼 있었고,

나는 아직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 상태였다.


새벽 4시마다 나를 깨우던 이집트의 닭들. 놀랍게도 내 객실은 4층이었다.


경유시간 포함 15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꿈의 나라 이집트는

임산부가 감당하기에 너무 가혹한 나라였다.

거리는 흙먼지와 매연, 담배 연기가 뒤섞여 따라다녔고

차들은 서로 양보라는 개념 없이 내달렸다.

접촉사고가 두 번이나 났지만, 놀랄 틈도 없었다.

그냥 이런 곳이라는 듯, 툭툭 털고 다시 출발했다.


독한 향신료 냄새는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입덧은 눈치 없이 점점 심해졌고,

이상하게 열무김치가 계속 먹고 싶었다.

유적지 한가운데서, 김치 생각을 하는 내가 웃기면서도 서글펐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해야 하지?'


예기치 못한 임신이 당혹스럽고

기대했던 여행을 못 따라주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룩소르를 여행하던 날,

기념품 가게에서 은반지를 하나 맞췄다.

2시간 뒤 찾으러 오라는 말을 듣고

컨디션 조절 겸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때 갑자기 말똥냄새가 확 올라왔다.


속이 뒤집히듯 울렁거렸고

구역질이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숙소까지 돌아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반지를 찾으러 다시 나갈 체력은 없어서

남편에게 대신 다녀와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서 기절했다.


후르가다에 도착해선

아주 예전부터 꿈꿔왔던 일을 하려고 했다.

이집트 휴양지에서 수영하기.

물이 다소 차가웠지만 이것만큼은 욕심내고 싶었다.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사막 투어를

이미 임신으로 포기했기에

이번만큼은 내가 원래 꿈꾸던 여행을 하고 싶었다.


수영을 시작한 지 20분쯤 지났을 때

입덧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순식간에 컨디션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제야 겁이 덜컥 났다.

아무 생각 없이 물에서 나와 수영을 그만두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처음으로 아기보다 나를 먼저 생각한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으로

내 안에 '아기'라는 존재가 아주 분명하게 느껴졌다.

관념이 아니라 아주 강한 책임감으로.


여행이 끝나갈 무렵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다.

아기가 괜찮을지 계속 걱정이 됐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그 사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을 것 같아서

일부러 태명을 짓지 않았다.

정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대신 마음속으로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돌아가서 검진을 받고,

아기가 건강하다는 말을 들으면

이 아이는 태어날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자고.


그렇게 태명을 정해두었다.

운명.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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