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했던 5월의 어느 날,
내가 살던 시골마을에 영구가 이사를 왔다.
왼쪽 볼에 움푹 들어간 보조개와 쌍꺼풀 없이 큰 눈,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자아이,
영구는 세련된 외모와 심형래 아저씨가 만들어놓은 캐릭터 이름으로 전학 온 첫날부터 시골학교에서 모르는 이 없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15분을 걸어서 학교로 가는 길은 외길, 한길뿐이었다.
나와 영구는 그 외길에서 자주 같은 시간대에 마주쳤다. 어색하게 몇 번을 함께 걷던 우리는 며칠 만에 시간을 맞춰 서로를 기다려주는 등교 짝꿍이 되었다.
등교 짝꿍이 된 이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우리는 서로를 기다려주었다.
가끔 늦은 날도 의리를 져버린 적은 없었다.
등하굣길에 영구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자기 엄마 이야기를 내게 해 주었다.
자기랑 똑같이 생겼고, 요리를 엄청 잘하며 서울에서 일한다고.
늦은 밤에나 집에 오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나 너는 자기 엄마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어제 들은 얘기나 오늘 들은 얘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영구가 하는 엄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영구가 말하는 엄마는 우리 집에 있는 엄마와는 많이 달랐다.
비가 오는 날 하굣길이면 영구와 나는 비를 맞고 집으로 뛰어왔다.
영구의 엄마는 서울에 있어서, 우리 엄마는 농사일에 바빠서........
영구네 엄마와 우리 엄마는 많이 달랐지만 또 그렇게 비슷했다.
우산을 들고 온 다른 엄마들 사이로 영구와 함께 집으로 뛰어올 수 있어서 나는 외롭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식날,
안 하던 화장으로 평소보다 더 촌스러워진 얼굴을 한 우리 엄마는 교문 앞에서 급히 산 꽃다발을 들고 졸업식장 강당 뒤에 서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영구는 졸업식 내내 강당 뒷문만을 바라보았다.
그날 아침 졸업식장으로 같이 걸어오며 소풍 가는 아이처럼 신이 나있던 영구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영구의 엄마는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영구네 엄마를 본 적이 없었다.
영구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고 얼마 후 영구는 연극반 동아리 오디션에 합격했다며 내가 있는 교실로 뛰어와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나는 자격증 시험공부에 바빴고, 영구는 연극 동아리 활동에 바빴다.
영구와 나는 다른 길과 다른 시간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1년 후 영구는 시골 국민학교에 처음 전학을 왔던 그때처럼 학교 내에서 또다시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영구네 언니가 늦은 밤 나를 찾아왔다. 동생 친구는 나밖에 모른다는 언니에게 나는 영구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영구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에서도 영구는 보이지 않았다.
영구가 매일같이 자랑했던 예쁘고 요리 잘하는 엄마는 나에겐 없었다.
꾸미면 꾸밀수록 더 촌스러웠고,
직접 농사지은 찬거리로 그날그날 자식들 밥을 해주려 애쓰던 엄마만 나에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