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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나의 마음숲 Jul 04. 2021

똥개는 유기견이 되고 싶기도 하다.

몇 년 전 시골 친정집에 갔던 날,

원래 있던 똥개 옆에 그전에 보지 못했던 개가 한 마리 묶여 있었다.

낯선 사람을 보면 미친 듯이 짖어대는 친정집 똥개는 그날도 여지없이 우리 차가 대문 근처에 다다랐을 때부터 있는 힘을 다해 목청을 뽐내고 있었다.

그런 똥개 옆에서 반쯤 감긴 눈으로 꼬리까지 흔들며 우리 가족을 반기고 있는 개는 친정집 마당에 참 안 어울린다 싶은 아이, 아니 개였다.

자고로 개는 낯선 사람을 보면 짖어서 주인에게 알려야 밥값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친정 부모님 눈에 애물단지가 될법한 그 개가 어쩌다 친정집 마당에 있게 된 걸까?


"나만 보면 발라당 누워서 지 만져달라고 난리다."


엄마는 그 개를 보며 입으론 흉을 보시고 눈으론 마음을 주셨다.

어느 날부턴가 친정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밥을 훔쳐먹고도 집 근처를 떠나지 못하던 그 개를 엄마는 결국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집에서 키우다 멀리까지 와서 버리고 간 모양이라고, 사람 좋아하는 모양새가 그런 거 같다고, 엄마의 짐작으론 그랬다.


"어쩐지 외모가 저기 똥개랑은 좀 다르더라니."


외모는 사람이고 개고 잘나고 볼 일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금세 유기견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텃밭 가던 엄마도, 담배 피우러 나온 아빠도 늘 눈길은 그 유기견에게 닿았다. 똥개도 유기견 옆 개집에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유기견에게 닿은 눈길이 똥개에게 옮겨져 오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똥개가 엄마 아빠를 보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본 이후,

나는 유기견이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고 눈웃음을 칠 때마다 똑같이 나를 향해 미친 듯이 짖고 있는 똥개를 한 번 더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이 똥개가 할 수 있는 자기만의 사랑이고 표현일 거라는 생각이 드니 똥개가 나처럼 느껴졌다.

4남매의 맏이로 크면서 그래야만 한다는 교육이나 강요 없이도 나는 책임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2살 어린 여동생은 걷고 5살이 넘도록 할머니 등에 업혀 다녔다는 소문난 떼쟁이였음에도 말이다.

부모님의 삶이 나를 철들게 했고,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으로 말도 사랑도 대신할 수 있다는 나만의 믿음에 기대어 자랐고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살면서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있는 힘껏 표현해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었다. 누군가 너무 다가온다 싶으면 불현듯 무서워 뒤로 물러나게 되었고 그렇게 나만의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너무 들이대지 않는 적당한 거리와 온도를 가진 남편이 그래서 더 내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말없이 내 할 일을 하는 것이 내 본분을 지키는 일이고, 마음이 말과 표현을 대신해 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사랑을 전했다.

그 사랑은 남편과 아이들뿐 아니라 내가 맺고 있는 많은 관계 안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제법 믿음을 주는 사람이지만 분명 사랑스럽게 따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만난 직장 동료는 아흔에 가까운 아버지를 귀요미라고 부른다며 자신의 아버지 얘기를 재밌고 유쾌하게 전해주었다. 5남매의 막내딸로 자랐다는 그녀가 들려준 아버지는 얼마 전 장기 기증 신청을 하셨다고 했다. 당신이 어질지 못하고 착하게 살지 못해서 장기 기증이라도 하고 가면 마음이 편할 거 같다고 하셨다는 그녀의 아버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전하는 그녀도 듣는 나도 뭉클한 마음에 잠시 목이 메었다. 그녀의 귀요미 아버지는 참 따뜻한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둔 그녀가 들려준 자신은 누굴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어렵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껏 한 사람과 살고 있는 것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그저 신기한 일이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차고 넘치게 자신의 마음과 사랑을 쏟아내 보였다.

그리고 며칠 전 그녀는 내게 새로운 사실을 하나 고백했다. 몇 년 후 그녀가 계획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안에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졸혼이 들어있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말고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지금부터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마음과 사랑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 갖는 미련은 아끼고 아껴 믿음으로 보여주는 나 같은 사람보단 분명 가벼운 모양이었다. 그녀는 졸혼 후에 갖게 될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가 지금 자신을 더 열심히 살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라고도 말했다.

나는 마음 안에 담긴 만큼의 표현을 실컷 쏟아내 본 적은 없었지만 내 마음이 그렇지 못해서였던 적도 없었다. 감히 남편과 아이들을 빼고 나만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지금껏 내게는 없었던 것이다.

사랑이 담긴 마음이면 되지 않겠냐 싶었던 내가 그녀에게 배운 건 미련을 갖지 않을 만큼의 표현을 끄집어내는 그녀만의 방식이었다.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내가 품은 마음과 사랑을 실컷 표현하고 쏟아내고 나면 어느 날 나도 나만의 삶에 대한 꿈이 꿔질 수 있는 용기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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