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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옳은 Mar 13. 2022

같이 일하기 싫은 사무실의 빌런과 진상들에 대한 건

나도 안 잘리지만 쟤도 안 잘린다

공무원 빌런, 사무실 빌런, 같이 일하기 싫은, 사무실 진상, 시보 빌런…

블로그에 포스팅한 <같이 일하기 싫은 사무실의 빌런과 진상들에 대한 건> 1탄​ 글 유입 검색어다. 다들 얼마나 싫었으면 인터넷에 이런 것까지 검색을 하실까.


객관적인 사람인 척 사무실 빌런 및 진상의 유형을 몇 가지로 정리한 글을 썼지만 진상과 같이 근무하던 시절의 나는 이런 사리분별이 안 되는 지경이었다.​


그 사람 때문에 겁에 질려 점심을 못 먹는 날도 허다했고 출근 생각만 하면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서 병원에 가 약 처방을 받기도 했다.


유일한 팀원인 미옆이와 같이 점심 먹기 싫어서 화장실에서 이렇게 끼니를 해결할 때도 있었다. 휴게실에서 먹으면 와서 말을 걸까봐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고작 발령받은 지 8개월만의 일이었다. 정기 인사 때 발령이 나지 않아서 동기도 없고 이른 나이에 취업을 해서 깊게 공감해 줄 직장 다니는 친구도 없던 시절이었다.

미옆이(미친 옆주임)는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었다. 하하호호 웃으며 즐거워하다가 이해가 안 가는 포인트에서 별안간 기분이 나빠져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걸 먹으라고 준 거야?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뭐야?” 등등 입만 열었다 하면 스트레스를 주는 말들이 나왔다.

10년차면서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업무를 나에게 떠넘겼다. 말없이 사라져 서너시간씩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미옆이라는 별명답게 그 와중에 늦은 밤에 나에게 예의를 운운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부지런도 하지.​


다른 직원을 무거운 물건으로 때리려고 했다는 과거까지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언제 맞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혹시나 미옆이가 때리면 반격하지 말고 맞고 가만 있으라는 조언까지 들었다.(신고했을 때 불리해지지 않게…)


당시에 위로받으려고 저장해둔 이미지…. 하지만 출근만 했다하면 다시 우울해졌다.

직장 생활을 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도 다년 간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나는 내가 잘 한 건지 못 한 건지 정도는 분간할 줄 아는 사회인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문제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처음 몇 달 까지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잘못한 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진 탓이었을까. ‘과연 이 생활이 끝나기는 할까, 힘들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털어놓는 것도 자꾸 하면 다들 싫어할텐데…’ 라고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고충이 있어도 속으로 삼키게 됐다.​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살이 80kg 까지 쪄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약이 없으면 출근할 수가 없게 됐다. 출근길에 차라리 사고가 나길 바랐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출처 unsplash


그동안 모은 증거를 모아 감사과에 제출하고 사내 게시판에 그간의 행적을 폭로하는 글을 쓴 다음 인사 고충 상담을 하러 가…는 엔딩이었다면 시원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미옆이가 휴직에 들어가게 됐다. (놀랍게도) 어린 자녀가 있어서 반 년 간 육아휴직을 쓴다고 했다. 반 년 정도면 복직을 했을 때 타 부서로 배치될 확률이 높았다.​


미옆이의 휴직이 정해진 뒤부터 나도 할 말이 있으면 참지 않았다. 때리면 맞지 뭐, 라는 생각으로 지킬 건 지키라고 따박따박 대꾸했다. 미옆이는 내 반응에 당황했는지 입술을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파들파들 떨며 “너 그만 말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저 말 안 하는데요. 지금 주임님만 말하고 있잖아요. 주임님만 조용히 하면 되는데요.”라고 대답해주었을 때 어찌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른다.

문자를 자꾸 보내길래 차단했다. 아침 저녁으로 인사도 당연히 안 했고 밥도 당당하게 따로 먹었다.​


대망의 디데이, 미옆이가 휴직하는 날 집에서 파티를 했다. 다이어트 계획도 세우고 마인드셋도 재정비했다. 살면서 가장 기분좋게 맞이하는 새해였다.


미옆이가 사라져서 기뻤고 지난 시간을 떠올리니 슬펐다.


누군가는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네가 성숙해질 수 있었지 않았니.” 라고 한다.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고역을 겪지 않았더라도 이 정도는 성숙해졌을 거다. 성장은 긍정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정신 건강 측면으로 봐도 훨씬 더 이로울 거다.​


진짜 문제는 앞으로 이런 빌런을 또 만날 것이란 점과 이번처럼 시원하게 대꾸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미옆이는 막상 덤벼보니 하수였다. 만약 결정권이나 인사권을 쥔 상사가 빌런이라면 인사 고충을 쓰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이 ‘어려울’ 뿐, 불가능한 건 아니다. (주변에서 신고도 하고 자기 권리도 잘 지킨 사례를 봤다. 당사자가 심적으로는 힘들었겠지만 결국 상황은 바뀌었다.) 오늘의 내가 멀쩡해야 내일의 내가 있다. 살아만 있으면 인생은 또다른 장면을 보여주기 나름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삶을 쥐고 흔들 권리를 주지 않는 것, 너무 벅차면 때로는 그 씬을 찢고 나와버려도 괜찮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글로 쓰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종종 내가 다시 읽기를 바라며 쓰는 글이기도 하다. 사실 그 빌런들만 없으면 될 일인데. 필리핀 청부 살인이 15만원밖에 안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해주는 친구들과, 언제든 힘들면 내려놔도 된다고 말해주는 애인을 보며 마음 근육부터 일단 키워보는 중이다.

이 글을 검색해서 여기까지 읽은 독자님, 혹시나 지금 힘든 시간을 겪고 계신다면 무조건 그 시간은 지나가게 되어있으니 부디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요. 판을 엎어도 생각보다 미친듯이 큰 일은 안 일어난답니다. 응원해요.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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