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나란히 옆에 서 있는데 나보다 한 십 센티쯤은 작은 엄마가 오늘따라 유난히 작게 느껴졌다. 단지 내가 엄마보다 덩치가 커서 느끼는 감정만은 아니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엄마는 검은 머리 사이로 희끗희끗 흰머리가 보였고, 땡땡하던 피부는 늘어졌고 거칠어졌다. 엄마도 어릴 땐 나처럼 찰랑거리는 머릿결과 부드러운 피부를 가졌겠지. 문득 젊은 시절 엄마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내 방 책장 한 켠에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식에 찍은 사진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 속에는 할머니, 꽃다발을 든 나, 엄마가 교문 앞에 서로의 팔을 맞잡고 서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젊은 엄마의 모습이었다. 지금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현재의 엄마와 사진 속 엄마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많이 달랐다. 지금보다 이십 년은 젊은 그때의 엄마는 나보다 30 센티 정도는 컸고 더 강인해 보였다. 지금은 무거운 짐도 척척 들기에 버거워 보이고 어깨허리 성한 곳 없는 엄마를 내가 더 챙겨줘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의 엄마는 야생 속에서 추억을 간직하며 사는 할미꽃 같다. 내가 든 꽃다발에는 수많은 의미를 가진 꽃들이 섞여 있다.
젊었을 때 엄마는 마치 하얀 칼라 꽃과 같았다. 은은한 향기를 내는 칼라 꽃은 화려해 보이지는 않아도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내었다. 연약해 보이는 꽃잎 속에서도 단단한 꽃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엄마는 꽤 어린 나이에 나를 낳고 일을 하며 그렇게 나를 키웠다. 젊은 시절 엄마는 은행원이셨는데, 일과 육아를 동시에 병행하기란 지금보다도 더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때 엄마의 꿈은 은행원으로서 오래 근무하며 책임감 있는 자리에 오르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안정적인 은행원을 그만두고 육아를 중심에 두었고 그렇게 엄마의 꿈은 멀어져 갔다. 엄마 자신의 삶보다 엄마로서 사는 삶을 택하신 거였다. 이 선택은 남자인 아빠보다 여자인 엄마에게 더 가혹한 선택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쯤 엄마는 나를 낳고 키웠는데, 철없는 내 모습을 보면 내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엄마의 청춘을 빨아먹고 자란 내가 엄마의 꿈을 놓치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엄마가 하고 싶은 일 더하지 뭣 하러 일찍 관뒀어.’라는 말에 엄마는 ‘네가 잘 컸으면 됐어’ 하고 마셨다. 그 말이 난 더 안타까웠고, 씁쓸했다. 엄마의 삶에서 엄마는 두 가지의 선택지 밖에 없었고, 둘 중 한 가지만 선택해야 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가지는 것은 포기해야 하고, 육아휴직이 있더라도 쉽게 사용하기엔 동료들의 눈치가 보인다. 남자에게는 더 부담스럽다. 결혼하면 아이를 낳으라는 집안의 기대와 아이를 낳으면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압박감 사이에서 여자인 엄마는 더 잔혹한 두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된다. 냉정한 현실 앞에서 이성적 선택보다는 10달을 품은 자식이라는 감성에 이끌려 엄마가 되기로 한 여자가 아빠가 되기로 한 남자보다 훨씬 많다. 낳은 게 다가 아니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키우는 과정 속에서 아빠가 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엄마가 되기 위해 일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 차라리 엄마가 되지 않기로 다짐한 사람들을 보며 전 세계 중 합계출산율 1.1명, 출산율 최하위에 그치는 것은 필연적 결과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엄마 앞에 놓였던 양자택일의 두 개의 선택지를 넘어, 언제 우리가 더 많은 선택지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엄마의 청춘은 벚꽃처럼 빠르게 졌지만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진 속에서 꿈을 갖고 살았던 젊은 시절의 엄마였다. 지금의 엄마는 젊은 시절의 꿈을 가슴속에 묻고 사는 분홍빛 수국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