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을 잔 게 실수였다. 이미 모두가 잠에 든 시간임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밀린 카톡 메시지도 읽고, 각종 SNS 속 지인들의 일상을 확인했다. 핸드폰을 하니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한 번 접속하면 그만 두기 쉽지 않다는 유튜브에 들어갔고 똑똑한 알고리즘 덕에 관련된 수십 개의 영상들을 보고 또 보았다. 새벽 네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새벽이 되니 방문 넘어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게 나밖에 없단 사실에 세상이 온전히 나의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잠에 들지 않으면 당장 내일이 더 힘들어질 것을 뻔히 알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시간을 즐겨 보기로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 추억 여행 만한 게 없다. 핸드폰 사진첩에 들어갔다. 정리 안된 수천 개의 사진이 있었고, 가장 오래된 것부터 사진을 보며 추억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꽤 오래 사용한 핸드폰 덕분인지 가장 오래 전의 찍은 사진에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보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7년이나 지났는데 사진 속 할머니는 나를 보며 여전히 미소 짓고 계셨다. 순간 할머니 순간에 울컥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랑 지낸 시간 덕에 더 애틋했고 유독 할머니를 잘 따랐기 때문에, 할머니랑 함께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보며 할머니가 돌아가신 게 믿기지 않았고, 돌아가신 지 벌써 7년이 넘었다는 건 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당연히 내가 대학 입학도 하고, 졸업도 하고, 한다면 결혼까지 하는 모습도 볼 거라고 믿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당연한 것은 없었다.
우리는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라진 상황에 살고 있다. 친한 사람과 자주 만나는 것, 쉽게 여행을 가는 것,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 환한 미소로 상대에게 웃어 보이는 것 모두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다. 이제는 당연했던 이 모든 게 꺼려지고 어려워졌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부대끼며 사는 세상에 우리는 조금씩 거리 두며 사는 게 습관이 되면서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당연히 누렸던 것은 누군가의 희생과 애정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당연하고 생각한 것들에 고마움을 받아들여야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당연히 오래 살아 계실 줄 알았던 나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워졌다. 고집 세고 말 잘 안 듣던 어린 시절의 나를 잘 보살펴 주시고 키워 주셨는데, 그 정성과 사랑을 왜 당연하다고만 생각하며 살았을까 하고 후회했다. 조금 더 다정하게 연락하고, 조금 더 자주 찾아 뵐 걸 하고 말이다. 그때의 나는 어리석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깨달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힘든 몸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했을 것이다. ‘당연하다’의 반대말은 ‘감사하다’인 것을 깨닫고, 할머니 생각에 잠시 동안 추억 여행을 하며 배게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