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청소 좀 잘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내가 독립하기 전까지는 당연하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책상에는 자주 쓰는 가방과, 책 몇 권과 필통을 빠져나온 펜들, 반쯤 구겨진 영수증과 저녁에 쓰고 놔둔 화장품과 휴지 몇 조각까지 다양하게 어질러 있긴 했다. 사실 치운다고 치운 상태였지만 내가 보는 눈보다 엄마의 눈은 한층 더 까다로웠다. 결국 엄마가 내 책상을 더 깔끔하게 치워 주었고, 그 덕으로 나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책상 정리도 안 하던 습관이 가방 정리도 소홀하게 만들었다. 가방 문이 열린 상태로 책상 위에 너저분하게 올려져 있는 가방에서 무언가 발견한 엄마가 내게 보여주었다. 콘돔이었다. 이게 하필 왜 그때 거기서 나왔을까. 순간 어색해진 공기는 참을 수 없었다. 엄마는 이게 뭐나며 되물었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지만 침착하게 답했다. 이거 지나가다 받은 거야. 요즘 밤에 술집 앞에 돌아다니다 보면 나눠줘.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 순간에 말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솔직히 말해야 하나, 나도 이게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는 둥 발뺌을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별 말없이 지나갔고, 왠지 양심에 찔리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니 왜 콘돔을 숨겨가며 써야 하는 거야. 안 쓰는 게 더 이상하잖아.’ ‘외국에서는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조심하라고 직접 챙겨준다 하던데.’ 하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역시 한국에서는 부모님이 자식의 일탈에 대해 믿지 않는 게 분명해 보였다. 요즘 청소년들의 첫 성관계 시기는 평균 13.6세고 심지어 점점 빨라지는 추세라고 하는데, 이미 성인인 내가 숨길 이유는 없었지만 한국의 보편적 정서로는 쉽게 말할 수 없었다. 하지면 언제쯤 이 민감한 주제로 부모와 자식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올까.
Jtbc 마녀사냥 프로그램이 방송했을 때 상대적으로 종편이라 가능했겠지만 파격적인 미래형 방송 프로그램이 신선하면서도 놀라웠다. 그 당시에도 그동안 금기기 되었던 성적인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시도로 주목을 받았지만 부모와 성인이 함께 보기도 민망했고, 같이 보더라도 마냥 웃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부모로부터 올바른 성교육을 받아야 할 시기에 교육받지 못한 청소들은 오히려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가정 수업의 일부였고 그 효과는 미약했다. 각종 성범죄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올바른 성지식을 가지고 누구 하고나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와 성에 대한 궁금증을 부모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 다가가야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강압적인 다그침은 오히려 어린 자식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게 한다. 성은 일방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소재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콘돔은 성인용품이 아니다. 약국 편의점 온라인 쇼핑몰 등 어디서나 살 수 있다. 콘돔이 내 가방이 아닌, 옷 안주머니, 화장품 파우치나 지갑 등 어디에서나 와도 이상하고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게 왜 거기서 나오냐며 따져 물을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