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밤을 좋아했다. 밤이란 시간에 두 가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밤은 때론 화려하기도 했고 고요하기도 했다. 형형색색의 간판과 조명 아래 늘어진 술집 속에 껴 있으며 더 화려한 미래를 꿈꾸기 좋았다. 깊은 밤 새벽엔 하루 종일 어지러웠던 마음을 글로 풀어내기에 알맞았다. 주로 글은 새벽에 썼다.
밤은 참 나와 닮았다. 대체로 낮엔 활동적이고 쾌활했고 밤엔 생각거리가 많은 나처럼.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게 조증과 울증의 양극성 감정 변화 같았다.
밤이 좋은 이유엔 별을 볼 수 있다는 게 포함됐다. 별이 만들어져 내 눈에 보일 때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란 걸 알아서인지 밝게 빛나는 별을 볼 때면 더 마음이 움직였다. 고등학교 1학년 지구과학시간에 별에 대해 배운 거 같긴 한데 이과생은 아니라 잘 모르겠다.
별이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밤에 별이 잘 보였지만 유독 까만 밤이 현재 내 현실같이 느껴졌다. 그때 보이는 한 두 개의 별들이 앞으로는 빛날 거라고 위로해주는 듯했다.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밤에 더 감정이 북받쳤다. 입학이든 입사든 하기 위해선 늘 독서실을 통했다.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작은 형광등 빛에 의지해 책을 들여다봤다. 스스로 빛을 내기 위해 빛이 사라진 곳에서 애쓰는 게 서글펐다.
밤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해야 할 일을 바쁘게 끝내야 할 것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걸을 때 발걸음도 느려졌다. 낮에 거칠었던 파도도 잠잠해 보이는 밤에는 괜한 주변 소음이 들리지 않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교통체증을 용서치 않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나 주변 공사장 소리, 사람들 이야기 소리마저 크지 않아 옆 사람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같이 있는 데 둘만 있는 것 같은 공기가 흐르는 시간을 좋아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는 사랑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굳이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해서 뭐든지 해주고 싶을 수는 있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걸 다 해달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꿈은 달랐다.
사랑은 구걸이 아니었지만, 꿈은 구걸해야 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이라면 제발 그 일을 시켜달라 구걸하고 애원해야 했다. 그래야 간신히 그 일에 발을 담가볼 수 있었다. 꿈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내가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걸 증명해가는 과정이 꿈을 찾는 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확고한데 기나긴 밤이 계속됐다. 시간은 매일 흘렀지만 내 마음은 늘 밤이었다. 손에 잡힐 듯한 단계에도 오르지 못했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감이 오지도 않았다. 꿈이란 별을 잡기 위해서 너무 먼 길을 가야 했다. 아무리 밤을 좋아한다고 해도 계속 밤에서만 살 수는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별이 되기 위해 밤마다 빛을 내려고 애쓰고 있을까. 나도 아직 그 무리에 속해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밤은 지나갈 것이다. 별이 빛나는 이유가 밤이 어둡기 때문이라는데, 우리가 더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잠시 어두운 곳에 있을 뿐이다.